악명 높은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와 노동생산성을 말할 때 늘 함께 해주는 형제 같은 네 나라가 있다. 우선 모든 지표에서 바닥을 깔아주는 멕시코에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멕시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근로시간 타이틀을 한국에게 양보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OECD에서 가장 낮다.
그리스, 칠레, 폴란드 세 나라는 한국, 멕시코와 함께 근로시간 ‘글로벌 톱 5’, 노동생산성 ‘최하위 5인방’을 굳건히 지켜온 든든한 혈맹들이다.
자고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책상에는 오래 앉아있는다던 선현들의 지혜로운 말은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진리인가보다.
그런데 이상한 숫자가 있다.
낮은 생산성으로 길게 일하는 이들 나라 가운데 가난한 곳은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2017년 기준 1인당 GDP를 보면 한국이 약 2만9700 달러로 가장 높고 칠레(약 1만4300 달러)와 폴란드(약 1만3400 달러)는 1만 달러를 넘어서 있다. 멕시코(약 9000 달러), 그리스(약 8900 달러)도 빈곤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혹시 과로사회가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답이라고 말한다.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함으로써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것은 맞지만, 단순반복형 근로방식은 이미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같은 노동생산성으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야 말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낮은 생산성과 장시간 노동 가운데 긴 근로시간은 종말을 고하는 중이다. 유럽 같은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되면 남는 과제는 그들의 효율을 어떻게 따라잡을지가 된다.
고도성장기였던 1990년대 무려 176%에 달했던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최근 몇 년 사이 1%에도 못 미치는 상태로 추락해 있다. 통계청과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제조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16~2017년 0.98%로 떨어졌다. 사실상 생산성 증가가 멈춘 셈이다.
서비스업이라고 다를까.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6년 내놓은 ‘노동생산성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독일의 서비스업 생산성이 82.6%에서 72.8%로 9.8%포인트 하락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59.4%에서 44.6%로 14.8%포인트 떨어졌다. 다른 나라 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제조업의 절반도 안된다는 점에 더 눈길이 간다.
OECD 낙제생 5인방 중 그리스를 다시 소환해보자. 1980년대 그리스는 1인당 GDP 세계 1위를 질주하던 부자나라였다. 2017년 1인당 GDP 약 10만7700 달러로 OECD 1위인 룩셈부르크 따위는 당시의 그들에겐 그럭저럭 먹고사는 이웃 정도였다. 강한 경제에 바탕을 둔 자신감으로 그들은 그 때 연금을 확대하고 공무원을 늘렸다. 국가 디폴트(Default)와 그렉시트(Grexit)로 얼룩진 지금의 그리스를 예견한 이들은 몇이나 있었을까.
그리스와 대한민국의 닮은 구석이 걱정이다. 그 때의 그들처럼 연금을 늘리고 공무원을 더 뽑고 있는 우리는 생산성과 근로시간면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고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억해야 할 일은 근로시간만 고쳐서는 곤란하다는 대목이다. 생산성을 걱정하는 OECD와 IMF의 조언에 귀를 열어 둘 필요가 있다. IMF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 연평균 2.2%로 떨어진 뒤 2030년대에는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다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동시장 참여확대를 위한 구조개혁과 재정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OECD는 지난해 말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성 향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요약하자면 짧되, 굵게 일하는 사회여야 한다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