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77) 전 대통령의 첫 옥중조사가 끝내 무산됐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한 뒤 조사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신봉수(48·사법연수원 29기) 첨단범죄수사 1부 부장검사와 수사관 3명은 26일 오후 2시께 이 전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 문정동 동부구치소를 방문했으나 조사를 거부한다는 이 전 대통령의 입장만 재확인한 채 3시 20분께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견해를 담은 서면을 미리 준비해둔 뒤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전달했다. 이에 검찰은 이날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구치소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인과 구치소 교도관을 통해 (조사실로) 나와서 대면이라도 하자고 설득했으나 본인이 안 나오겠다고 해서 돌아왔다”며 “(이 전 대통령을) 추후 다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전 대통령 측 강훈(64·14기) 변호사는 이날 오후 12시 10분께 대치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알렸다. 강 변호사는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물을 것을 여러 차례 천명했지만, 구속 후에도 검찰은 함께 일했던 비서진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고, 일방적인 피의사실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고 검찰의 추가 조사에 응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며 구속 후 검찰 조사를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재판정에서 사실 관계가 밝혀지는 걸 기대한다”며 검찰 조사에 계속 불응하는 대신 재판에서 입장을 소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검사 대면을 한 상태에서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구속됐으니 아예 안 나간다는 건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22일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4일 만이다. 애초 검찰은 소환 조사 방식을 검토했으나 전직 대통령 예우 문제와 보안·안전 등 이유로 구치소를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검찰은 앞으로 수차례 방문조사를 벌여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를 보강할 예정이다. 촘촘히 증거를 쌓고, 법리를 구성해 기소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경찰을 동원해 민간인과 정치인을 불법 사찰한 의혹 등 최근 불거진 부분을 조사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