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입자선 치료법은 간질성 폐염, 당뇨병, 신장병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발병 초기임에도 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에게 적합한 치료법입니다. 폐암 1기의 경우 1회 조사(照射)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고 전립선암의 경우 12회 조사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에이플러스그룹과 계열사 AAI헬스케어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에서 300여 명의 환자,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암정복 국제세미나’에 강연자로 나선 일본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의 츠지이 히로히코 가나가와현 중입자암치료센터장은 ‘꿈의 암치료 기술’로 불리는 중입자선 치료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중입자선(탄소선) 치료는 탄소 이온을 거대한 입자 가속기에 주입해 암세포를 빛의 속도로 정밀 타격함으로써 사멸시키는 첨단 암 치료법이다. 중입자는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를 뜻한다.
암치료에서는 여러 종류의 중입자 중에서도 탄소 중입자를 사용하는데, 초당 10억 개의 원자핵이 암세포에 도달해 DNA를 완전히 파괴하는 원리다.
중입자선 치료의 장점은 무엇보다 정상 세포를 손상하지 않고 종양 부위만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타격한다는 점이다.
츠지이 센터장은 “중입자 입자는 양자보다 12배 더 무겁다. 이 때문에 엑스선이나 양자선과 비교하면 DNA의 이중사슬을 모두 끊어 버릴 정도로 암세포 치사 작용이 2~3배 더 높다”고 설명했다.
치료 기간도 대폭 단축된다. 기존 방사선이나 양성자 치료를 통해 평균 30회의 조사가 필요한 경우 중입자선 조사는 12회만 받으면 된다. 전립선암이나 두경부암은 3주 이내로 치료가 끝난다. 츠지이 센터장은 “치료 기간이 단기간이라 외래 치료도 가능하며, 환자의 신체에 무리가 그만큼 덜 간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중입자선이 수술보다 반드시 효과적인 치료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입자선은 주로 수술을 감당하기 힘든 고령 환자나 초기 단계의 암 환자, 수술이 어려운 부위에 암이 발병한 환자를 대상으로 많이 사용된다.
일본 NIRS 발표에 따르면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 환자에게 수술 전 중입자 치료를 시행한 결과 5년 생존율이 20% 이하에서 53%까지 향상됐다.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의 경우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할 경우 2년 생존율이 10% 미만에서 66%까지 향상됐다.일본은 중입자선 암치료를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나라다. 1984년부터 약 1조 원을 투자해 10년 만인 1994년 NIRS가 중입자선 암 치료를 시작했으며 그 후 약 10년간의 임상시험을 거쳐 2003년 일본 정부로부터 안전성과 효능을 인정받았다.
츠지이 센터장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입자 치료 2만 건 중 1만 건이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입자선 치료가 가능한 치료센터 10여 곳 중 5곳도 일본에 있으며, 현재 야마가타와 오사카 2곳에 중입자 치료센터를 추가 건설 중이다.
국내에서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이 2022년부터, 서울대병원은 부산 기장군에서 2023년부터 중입자선 암치료 시작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세브란스 병원은 국내 최초로 3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일본 측과 중입자 치료기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께부터 중입자 치료를 시작할 계획이다.
중입자선을 만드는 것은 ‘HIMAC’이라 이름 붙여진 원형의 가속기다. 중입자선 치료에서 탄소 원자가 지닌 6개의 전자 전부를 떼어낸 ‘6가 탄소핵’을 싱크로트론을 통해 광속의 약 70%까지 가속시키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가속기는 치료실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전하면서 환자에게 조사된다. 현재는 소형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지만 원 설비 규모는 120mx65m, 축구장 너비 정도로 상당히 크다. 세브란스에 설치되는 기기도 주차장 부지에 지하 5층, 지상 7층, 연면적 약 3만5000㎡(약 1만 평) 규모로 설치될 예정이다.
츠지이 센터장은 “현재 중입자선 치료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받게 하기 위해 가속기를 소형화하는 작업이 계속된다”며 “머지않아 소형화가 이뤄지면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