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1984년 1월 미국 5위 철강제조사인 베들레헴과 철강노조(USW)는 밀려드는 수입품 탓에 못 살겠다며 통상법 201조에 따른 긴급수입제한조치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청원했다. 청원 내용은 수입 철강 15%를 쿼터로 묶고 시장질서협정(OMA)을 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산업 피해 판정이 나자, 레이건 대통령은 EC, 일본, 한국 등 27개국과 철강 쿼터 협상 개시를 지시했다. 당시 연임 여부를 결정할 대선을 2개월 앞둔 레이건으로서는 철강업계의 지지가 절실했을 것이다. 협상 결과 철강 수출국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출자율규제(VER) 협정을 맺게 되었다. 자율규제란 수출국 스스로 연간 쿼터를 정해 주어진 물량만 수출하겠다는 약속이다. 카메룬 변호사는 당시우리 업계는 미국 시장의 1.8%를 쿼터로 기대했는데 2.0%를 따 와 매우 기뻐했다고 회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수입을 규제하고자 작년 5월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규정은 수입 철강제품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때 수입을 전면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 조치로, 1962년 입법 이후 세 차례밖에 활용되지 않았다. 이번 조치로 수입 철강(25%)과 알루미늄(10%)에 관세가 부과되는데, 우리는 막판에 동맹국 예외를 인정받는 대신 작년 대비 70% 물량으로 수출 쿼터가 정해졌다.
과거 1984년과 비교해 이번 사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강력한 보호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철강산업의 부활은 기대하기 힘들다. 1984년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지만, 베들레헴은 부채 상환을 못 해 7년 뒤 파산했다.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Good to Great’에서 베들레헴의 몰락은 취약한 경쟁력을 수입 제품에 전가한 회사와 노조, 그리고 산업을 과보호한 정부 탓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번 조치로 혜택 볼 미국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비싼 철강 제품을 써야 하고, 모든 비용은 전후방 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다.
그럼 트럼프는 왜 무리하게 수입 제한 조치를 했을까?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내 정치역학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과 철강업계의 유착 관계는 워싱턴 K스트리트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닉슨은 1969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EC, 일본과 철강 수출자율규제 협정을 맺었고, 부시 대통령도 취임 1년 뒤인 2002년 긴급수입제한 조치로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철강산업에 타격을 주었다. 닉슨, 레이건, 부시에 이어 트럼프가 철강 수입을 규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리 내다보고 대비해야 했는데 아쉬운 대목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34년 전 철강 협상을 진두지휘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이제 USTR 대표가 된 만큼 앞으로의 수순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철강 수입 규제 이후 1985년 301조를 발동해 보험시장 개방, 지재권 보호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번에는 철강 수입 규제를 한·미 FTA 개정 협상, 환율 관리와 연계해 급한 불부터 껐다고 하지만, 미국이 언제 딴소리를 할지 몰라 우리 업계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미국 의회와 워싱턴 정계에서 우리 지지 세력을 확고히 하고, 철강 이외 다른 품목으로 통상 마찰이 번지지 않도록 사전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