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대신 '체인지업'이라 쓴다…'퇴출'보다 기업 변화시켜 회생 의미
“맨 왼쪽 사진에 있는 게 조계사 건너편, 첫 기업은행 본점 건물이에요. 2층짜리 작은 건물에서 처음 시작했죠. 두 번째 본점은 을지로2가 현재 SK텔레콤 건물로 8층짜리 건물을 5층 증축해서 13층짜리 건물로 옮겨왔어요. 1987년 을지로 36-1번지에서 50번지로 넘어와서 지금의 을지로 본점이 된 거죠.”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만난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대담에 앞서 지금의 을지로 본점이 있기 전까지 기업은행 과거 건물 모습들을 담은 사진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설명했다. 기업은행 역대 네 번째 내부 출신 행장인 만큼, 회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났다.
김 행장은 올 한 해 600여 개에 이르는 전국 영업점을 돌며 1만여 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반자 금융 DNA’ 전파에 열중했다. 취임 첫해에 가장 먼저 건전성 제고 등 기초체력의 토대를 쌓아둔 김 행장은 올해를 ‘중기대출 원년의 해’로 삼고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그가 추진하는 ‘동반자 금융’ 완성을 위해서는 국책은행으로서 중소기업 지원 업무를 강화하는 동시에 시중은행과 경쟁해 새 수익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김 행장에게 기업은행의 경영전략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올해 1분기 성적표도 이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경영의 중점 방향은?
“올 1분기 성적이 그룹 연결기준으로 보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올해에는 IB(투자은행)·글로벌·WM(자산관리) 부문 강화에 초점을 둘 생각이다. 올 초에는 WM사업부를 WM사업본부로 격상했다. 비은행사업 수익 비중을 20%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시작이 나쁘지 않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올해 7개 자회사의 수익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전반적인 경영구상을 말해 달라
“자회사 실적은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장기적 수익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자산, 자본 규모는 경쟁사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다. 은행과 자회사 간, 자회사 상호간 시너지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재 과제다. 은행·증권 복합점포 확대, 그룹사 간 공동펀드 조성, 공동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 복합상품 개발, 해외 동반 진출 등을 추진 중이다.”
-은행권이 기업금융 여신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는 등 중소기업 대출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강점을 꼽는다면
“과거 IMF 이전 시중은행들은 대기업 중심 대출을 주로 해왔다. 우리는 예전부터 중소기업 대상 대출을 주력해왔기에 오랫동안 심사역량을 잘 쌓아왔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업본부가 현장에 자주 나가고, 여신기업부에서 컨설팅과 모니터링을 지원해준다. 부실 징후가 있더라도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 만기 연장, 금리 인하, 신규 자금 지원 등의 채무조정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실행한다.”
-중소기업 재기 지원 프로세스인 ‘체인지업(Change-up)’ 프로그램 운영 현황은?
“작년 한 해 269개 기업, 총 여신 1조3785억 원 규모를 신규로 지원했고, 작년 말 기준으로 현재는 464개 기업, 총 여신 2조3935억 원 규모로 진행 중이다. 70여 명의 재무, 회계, 법률 전문가들이 연간 1000개 정도 회사에 무료 컨설팅을 해준다. 기업개선부에서는 금리를 낮춰주는 등 자금 지원에 들어간다. 이런 시스템이 시중은행보다 월등히 잘돼 있다. 이외에도 기업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M&A 지원 프로그램’과 ‘중소기업 전용 구조조정 PEF’가 있다.”
-앞으로 BIS(자기자본비율) 하락 가능성 등 건전성 측면의 리스크 관리 방안은?
“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하고는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실제 B+등급 이하처럼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들이 갖고 있는 여신 양을 100%로 보면 53%는 우리한테서 나간다. 그에 대한 리스크는 항상 안고 있기에 면밀하게 볼 수밖에 없다. 포트폴리오 관리, 조기 경보 및 와치리스트(watchlist) 시스템, 모니터링 등 여신 지원 단계별 리스크 관리 체계를 작동 중이다.”
-기술신용대출 정착 로드맵 최종 단계인 레벨4를 인가받았다. 기업은행만의 기술금융 노하우는?
“기업은행의 기술금융 지원금액은 은행권 전체 81조6000억 원의 27.8%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성과는 2011년께 기술금융을 시작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과대학 출신의 심사역 전문 인력을 뽑아서 기술금융부에 배치했고 내부 직원 역량도 키웠다. 57년 중소기업 대출 노하우로 직원들의 ‘촉’이 발달됐다고 보면 된다.”
-기업은행만의 ‘중소ㆍ벤처기업 육성 마스터 플랜’구상을 말해 달라
“IBK의 창업지원 마스터(MASTER) 프로그램은 크게 ‘자금지원’, ‘액셀러레이터(우수 창업기획자) 멘토링·컨설팅 제공’, ‘판로 개척 등 경영활동 전반 지원’으로 나뉜다. 지난해 출범한 창업벤처지원단을 중심으로 ‘IBK창공’에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기술에 특화된 혁신기업을 발굴해 육성할 예정이다.”
-창업지원센터인 ‘IBK창공(創工) 마포’가 오픈한 지 5개월, 입주 업체들의 데모데이는 언제 갖나?
“창공 마포점은 초기 경쟁률부터 치열했다. 현재는 399개 업체 중 20:1의 경쟁률을 뚫은 20개 기업을 육성중이다. 1기는 10개월간 운영되고 10월 31일 졸업과 동시에 데모데이를 갖는다. 창공 입주업체 중 2개를 기업에 직접투자했고 추가로 2개 기업에 시드머니를 지원할 예정이다. 외부 벤처케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아오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에 맞춰 저리에 대출도 내줄 생각이다. 올해 9월에는 ‘IBK창공 구로’를 추가로 개소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상·하반기를 나누고 3~4개월간 운영할 계획이다.”
-신남방 영업 확대는 어떻게 추진되는가?
“한국 중소기업이 활발히 진출하고 성장가능성이 높은 인도네시아·캄보디아·베트남에 주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M&A건이 상당히 진척돼 있어 내년 즈음에는 진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지난달 지점 개설 예비인가를 취득한 캄보디아는 10월 지점을 개점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작년 7월 법인 전환을 신청했지만 승인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해서 현지 인력을 늘렸다. 기존 하노이 지점 지점장 1명, 팀장 1명, 과장 1명이 상주하던 것을 직원을 더 보내 2팀 체제로 늘렸다. 호찌민까지 베트남에 2개의 지점이 있는데 운영은 4팀이 움직이도록 하는 형태다.”
-글로벌 분야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기업은행만의 중소기업 노하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번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와 만나서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기보다 기업은행이 그 나라의 근간이 돼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주겠다고 역설하니까 우리를 보는 시각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디지털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기업은행 고객이 해 달라는 대로 해주는 게 4차산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 핀테크와 같은 IT기술이 발전돼 있어야 한다. 동시에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20~50대를 아우르는 100명의 ‘i-ONE 뱅크’ 체험단을 두 달여간 운영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올가을 새로운 버전의 ‘i-ONE 뱅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업 고객을 위한 영업점 무방문, 무서류를 위한 3대 핵심 기반 서비스인 비대면 실명 확인 및 계좌 개설, 비대면 여신서류 제출, 비대면 전자약정 서비스도 연내 추진할 계획이다.”
-3300여 명의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졌다.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한 협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준정규직(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은 마무리됐다. 파견·용역 정규직화를 위한 ‘노·사·전문가 협의기구’는 현재까지 총 12회 협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현재 2000여 명의 전환대상과 관련한 논의는 완료했고 전환방식 및 처우개선에 대해 논의 중이다. 별도 자회사를 만들어서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순차적으로 하반기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현재 금융당국에서 구체적인 도입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이사 임면, 이사회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은 중소기업은행법 등에 명시되어 있어, 해당 법률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당행법을 포함한 기타 법령에 우선하는 공운법(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자 해 법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KDI)을 맡긴 상황으로 우리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