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LG그룹을 이끈 구자경 회장은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그러자 창업세대인 당시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평회 LG상사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현 GS리테일 명예회장) 등이 모두 고문으로 물러나며 3세 경영에 힘을 보탰다.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면서 구본무 회장 동생인 구본준<사진> ㈜LG 부회장 역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LG는 17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다음 달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 구광모 상무를 등기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임시주총에서 안건이 확정되면, 구 상무는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그룹 전반에 대한 의사 결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LG그룹의 4세 경영 승계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는 셈이다.
1978년생인 구광모 상무가 다소 이른 나이에 경영권을 승계받는 것은 아버지 구본무 회장의 와병 때문이다. LG 측은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배경에 대해 “구본무 회장 와병으로 인해 후계 구도를 확실히 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구본무 회장은 1995년 총수에 오른 뒤 럭키금성 대신 LG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냈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사실상 그룹 경영을 맡겨왔다.
재계 관계자는 “구 상무가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은 구 상무 중심의 경영 체제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라며 “구본준 부회장은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전통대로 향후 계열 분리 또는 독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G그룹 형제 및 형제의 자손들은 계열 분리를 해왔다. LS그룹, LIG 등이 그 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키고 LIG그룹을 만들었다. 여섯 형제 중 넷째부터 막내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형제는 2003년 계열분리해 LS그룹을 세웠다. 그룹 내부에선 구 상무와 6명의 부회장 중심 경영 체제가 안정화된다면 구 부회장의 분리가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분리 시나리오로는 구 부회장이 가진 ㈜LG 지분(7.72%)과 일부 계열사의 지분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일부 사업을 떼어내는 방법이 있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이 같은 방식으로 독립했다. 일각에선 LG유플러스부터 거론하고 있다. 전자와 화학으로 대변되는 LG그룹에서 통신 부문이 계열 분리되는 구도다. 지주사의 이점은 이런 계열 분리에 있다. 지주사가 가진 계열사 주식을 특정인에 넘기면 바로 계열 분리가 가능하다. 그밖에 LG화학의 바이오 사업 부문, LG상사 등이 계열 분리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편, 향후 구 상무는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구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LG는 순환출자 없는 지주회사 체제이기 때문에 ㈜LG 최대주주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현재 (주)LG의 최대주주는 구본무 회장으로, 전체 지분의 11.28%를 보유하고 있다. 뒤이어 구본준 부회장이 7.72%, 구 상무가 6.24%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