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관변 인사들의 경제·고용 상황을 보는 판단에 뚜렷한 차이가 엿보여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3월 고용통계가 발표되었는데 전년 동기 대비 신규 취업자 증가폭이 올 들어 3개월 연속 10만 명대에 그치며, 그동안 대략 30만 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낮아져 걱정이다.
그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에 반대하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입장을 바꿔 인정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분명히 없다”라며 “국내 소비 증가는 뚜렷하게 보인다”라고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말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광두 교수는 “현재 경기 상황은 경기 침체국면의 초입 단계”라고 또 다른 입장을 밝혔다.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인사들의 견해차는, 억지로라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써야 하는 기자들에게는 호재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의 향방이 불확실한 지금 이런 견해차는 큰 문제이다. 거론된 인사들이 정책 재단(裁斷)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는 김 부의장의 시각에 가깝다. 이 지면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므로 재언(再言)하진 않겠다.
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바탕을 두었다는 장 정책실장 의견의 근거가 궁금하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이지만 거시경제 전문가는 아니니 경제 분석을 산하의 연구소들에 의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터.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비가 늘었다는 분석은 억지스럽다.
올 1월 승용차 판매가 작년에 비해 약 19%나 늘었다. 또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홈쇼핑과 같은 무점포 소매 판매가 크게 늘었다. 1월 한파, 2월 설날(작년에는 1월)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소비 증가를 최저임금 인상과 엮는 것은 억지다.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들의 고용사정은 악화했을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이 주된 수입원인 가계가 수천만 원이나 하는 승용차를 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용직 등 주요 최저임금 대상 직종의 사정이 악화한 반면, 고용보험에 가입된 상용직, 계약직 근로자는 증가하는, 일종의 양극화가 진행되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소비에 기여했을 수 있다. 사정이 개선된 근로자들에게 일회성 호재는 승용차와 같은 내구소비재를 구매할 유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조업 불경기 조짐이 점점 짙어지며 더 이상 고용사정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식, 부동산도 지지부진하다. 근로소득이나 자산소득이 부진한데 소비가 늘 수 없다. 추진 중인 추경이 고용 사정 악화 추세를 확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냉정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정책 담당자는 넓은 시야로 잠재적 위험까지도 보아야 한다. 청와대, 당정협의체는 대선 캠프 시절과 달라야 한다. 대선 어젠다에 얽혀 보고 싶은 것만을 고집하여 캠프 인물들이 장으로 가 있는 관변 연구소들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확하고 다양한 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민간 경제연구소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대기업 산하 연구소는 경영진의 “내부 일이나 하라”는 종용에 공공기능을 포기했고, 공공기능이 주된 업무였던 민간 연구소는 빈집이나 다름없다. 민관의 분석이 충돌하며 문제의 핵심이 드러나는 과정이 더 이상 없다. 혹자에게는 친정부 시민단체만 있는 세상이 편해 보일지 모르나 신뢰받지 못하는 분석에 바탕을 둔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자칫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