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조치 없다던 기존 입장 사흘 만에 번복 "표현 미숙"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조사단에 주어진 권한 내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다"며 "고질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가 검찰의 수사의뢰를 언급할 수 없지만 검찰이 수사한다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다만 검찰과 법원 양측에 모두 부담이 되는 만큼 법원행정처가 주체가 돼 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조단 관계자가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 25일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처를 하지 않기로 했다"던 조사보고서의 내용을 번복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일선 판사들의) 검찰 수사의뢰 의견까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특조단 회의 직후 "조사 결과 형사처벌 대상으로 고발할 만한 사례를 없는 것으로 봤다"고 했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검찰 고발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사흘 만에 태도를 바꿨다.
법조계에는 김 대법원장과 안 단장, 특조단의 입장 변화가 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법원 안팎의 거센 비판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특조단 관계자는 "(조사보고서상) 표현의 미숙함이 있었다"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특조단은 지난 2월부터 약 3개월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 문건인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조사해왔다.
특조단은 190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외부의 재판 개입 의혹과 일부 진보성향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있지만, 인사상 불이익을 준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국법관대표회의 등 법원 구성원들이 수긍하지 않았던 지난해 1차 진상조사위원회, 올해 초 2차 추가조사위원회의 '블랙리스트 실체가 없다'는 조사 결과와 비슷한 내용으로, 판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특조단은 이번 사태가 양 전 대법원장이 201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상고법원 입법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일부 판사의 재산 목록을 들여다보는 등 사찰을 하고, 박근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 개입 사건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문건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특조단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에 실패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관련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등 각종 의혹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특조단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판사들의 인사권 보장 등을 작성한 문건을 2015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오찬에 들고 갔지만 실제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알지 못한다"면서 "당시 정권의 우호적인 재판에 대한 교감 사실을 양 전 대법원장이 알고 있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두 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며 "강제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추가 조사가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특정 재판 박근혜 정부 청와대 보고, 광범위한 법관 사찰 의혹 등에 대해 고발한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한 상태다.
법조계에는 검찰이 전ㆍ현직 대법원장과 판사 등 수사선상에 올려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사라는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관련자들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