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표 “ ‘증거인멸 목적’ 없었는지 살펴봐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재직 시절 사용하던 사법부 PC 하드디스크가 고의적으로 훼손돼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논평을 통해 “대법원의 대법관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조치는 공공기록물법과 대법원 내부 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며 “대법원의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어디에도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소거조치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어 “대법원은 대법원장 스스로 약속한 바대로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며 “검찰은, 법원의 제출 거부가 계속될 경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하여 ‘재판거래’등 모든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검찰은 사법행정 수뇌부였던 이들의 PC 하드디스크가 이른바 ‘재판거래’를 비롯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고 법원행정처에 임의제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로부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가 이른바 ‘디가우징’ 방식으로 훼손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삭제하는 기술이다. 전산 정보로 된 증거를 인멸하는 대표적 형태로,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쓰던 하드디스크는 퇴임 이후인 지난해 10월 디가우징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기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법원의 2번째 자체조사가 진행 중이던 때다.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퇴임하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폐기해왔을 뿐 의도적 증거 인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증거 능력 확보와 증거 훼손 경위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디가우징 된 하드디스크 원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민변에 이어 정치권도 대법원의 이같은 입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이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면서 “증거인멸로 조사를 방해할 목적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진상규명의 핵심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업무용 컴퓨터가 ‘디가우징’ 된 사실까지 드러나 국민의 사법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은 정부와 국회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예외일 수 없다. 판사 블랙리스트,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정권의 요리사로 전락한 사법부의 위상을 되찾고, 3권 분립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데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나설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