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시장의 규제 수위를 높이자 내 집 마련의 뾰족한 수가 없는 30·40대 수요와 억눌렸던 투자 수요가 아파트 청약 잔여분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잔여분 추첨에는 ‘만 19세 이상’ 외에는 어떤 자격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1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기 단지에서 청약 부적격 및 계약 포기로 인한 잔여분 추첨에 수만 명 인파가 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들어서는 ‘화서역 파크 푸르지오’는 5일 미계약분 28가구에 대한 인터넷 청약을 받았다. 이날 단지명이 대형포털 실시간 인기검색어 상단을 오후 내내 차지하더니 오후 4시 접수 마감까지 신청자 수는 4만4887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추첨 경쟁률이 1603 대 1까지 치솟은 셈이다. 이 단지는 조정대상지역에 속하지 않아 청약 당첨 뒤 6개월이 지나고 분양권 전매를 할 수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려든 곳은 앞서 세종시에 분양한 ‘세종 한신더휴 리저뷰’였다. 2월 추첨을 진행한 이 단지는 잔여분 40가구 모집에 5만3800명이 지원해 1347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어 5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 센트럴아이파크’는 잔여 8가구 모집에 2만2431명이 몰리며 28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20~21일 진행한 과천위버필드 잔여분 추첨은 25가구 모집에 2만4000명가량이 몰린 바 있다.
잔여분 신청은 청약통장 등 조건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많은 수요자의 구미를 당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가점제, 재당첨 제한, 강화된 1순위 청약 조건 등으로 청약 당첨 문틈이 좁아지자 어떤 조건도 묻지 않는 잔여분 추첨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났다. 특히 30·40대 실수요층의 투자가 활발하다는 현장의 설명이다. 수도권 인기 지역 단지의 경우 평균 당첨 점수가 적어도 50점은 넘기면서 30점대 가점이 대다수인 30·40대 청약 수요자는 잔여분 청약에 기대를 걸 수밖에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고덕 아르테온’ 잔여분 추첨 때부터 인터넷으로 간단한 절차에 맞춰 신청할 수 있어 직장서도 잔여분 청약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최근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 등에선 ‘줍줍’이란 은어를 써가며 잔여분 추첨 정보를 공유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줍줍’이란 ‘줍고 줍는다’의 준말로 게임에서 버려진 아이템이나 돈 등을 줍는 행위를 뜻한다. 청약 부적격이나 미계약으로 다시 나온 물량을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잔여분 청약을 칭하는 말이 됐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로또 아파트’로 불리던 ‘하남 포웰시티’가 분양 과정서 불법 청약 의심 사례 108건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이에 시장은 잔여분이 다시 대거 나올 것이란 기대감에 들뜨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달 26일 미계약분 1가구에 대한 추첨을 진행해 4673대 1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마포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정부 규제로 억눌린 수요가 비교적 자유로운 영역인 잔여분 추첨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 같다”며 “미계약분으로 나온 물량은 당첨자가 계약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가구의 형태나 조건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