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등 양국 간 산적한 의혹 전혀 해소 안돼 -“양대 핵무기 대국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형식적 대화 -트럼프, 푸틴에 약점 잡혔다 루머도...트위터에 “조작된 마녀사냥”이라며 언론 비판에 선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16일(현지시간)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회담은 두 나라 사이에 얽힌 산적한 의혹을 풀기는커녕 불확실성투성이인 초강대국 간의 우호관계만 연출, 국제 사회에 큰 우려를 남긴 채 마무리됐다.
이날 두 정상은 통역 외에 다른 배석자 없이 2시간여동안 단독 회담을 진행했다. 원래는 90분으로 예정됐지만 예상보다 30분 넘게 이어진 것이다. 회담을 시작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리는 논의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는 양대 핵무기 대국인 우리가 사이 좋게 지내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회담이 끝나고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깊고 생산적인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본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 지원,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 등으로 미러 관계는 ‘신냉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악화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 우방이었던 유럽연합(EU) 등에서 등을 돌리고, 러시아 북한 등 미국의 ‘숙적’에 대해선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회담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푸틴과 양국 관계 개선 모습을 연출했다 해도 미국이 러시아를 안보 상의 위협이라고 보는 입장이 바뀐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눈에는 아직 러시아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연출하는 것일 뿐, 무역 면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위협적이라고 여겨졌다면 이날 미러 정상회담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EU에 대해선 거액의 무역적자를 안고 있지만 대러 무역 규모는 매우 작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러시아에 접근하는 건 무역 문제에서 중국과 EU를 견제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미국 사법당국이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러시아 군 당국자 12명을 기소했음에도 트럼프가 푸틴과의 회담을 성사시킨 건 러시아 쪽에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부상하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과 미 대선 개입을 부인하고서도 미러 정상회담 기회를 잡은 게 그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을 거론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진영과의 공모는) 넌센스”라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유럽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트럼프의 강경책은 미국과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러시아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측 소식통은 “푸틴 정권의 목적은 가능한 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 직전에 그리스에서는 러시아의 첩보활동이 발각돼 러시아 외교관 2명이 추방되는 일이 있었다. 그리스 언론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목표로 하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관계 개선을 방해하려는 뇌물 공작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계산된 ‘연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올 것을 의식해 선수를 치기도 했다. 그는 헬싱키로 가기 전 15일 트위터에 “여러 해 동안 미국의 어리석음과 바보스러움 탓에 러시아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작된 마녀사냥!”이라며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이유를 전 정권 탓으로 돌리는 듯한 트윗을 남겼다. 그는 또 “회담에서 성공을 거두고도 불충분하다는 비판에 노출될 것”이라는 트윗도 올렸다. 그는 “많은 언론은 국민의 적이며, 미국 민주당이 하는 것은 저항과 방해다”라고 지적, 정상 회담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예상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15일 폐막한 제21회 월드컵 러시아 대회에 대해서는 “정말 훌륭한 대회였다. 지금까지 중 최고의 대회 중 하나였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축하의 뜻을 나타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를 선물하며 오는 2026년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공동 유치한 월드컵 대회의 성공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