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치오네 FCA 전 CEO 별세...두 회사 운명 뒤바꾼 자동차 업계 전설

입력 2018-07-26 08:09수정 2018-07-2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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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서 물러난지 나흘 만에 사망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운명 뒤바꾼 업계 전설로 평가돼 -업계 라이벌 수장들 애도 물결...월가서도 추모 -주가 폭락...회사 앞날 우려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전 FCA CEO 생전 모습. EPA연합뉴스
“당신과 당신 팀 덕분에 많은 나라의 수십 만 가족이 잘 살 수 있었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절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큰 별이 졌다. 25일(현지시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전 최고경영자(CEO)의 부음에 업계는 물론 월가에서까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월드 스타도 아닌, 한 기업 수장의 죽음치고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피아트 대주주인 아그넬리 가문의 지주회사 엑소르는 이날 존 엘칸 회장을 통해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친구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지키는 게 그를 기리는 최선의 길이라 믿는다.”며 마르치오네 CEO의 부음을 알렸다. 마르치오네가 FCA의 CEO에서 물러난 지 꼭 나흘 만이다.

같은 날 열린 FCA의 2분기(4~6월) 콘퍼런스 콜은 침통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피아트의 신임 CEO인 마이클 만리는 “매우 슬프고 힘들 때다. 세르지오는 특별하고 둘도 없는 존재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마르치오네는 얼마 전 오른쪽 어깨 수술 경과가 좋지 않은데다 예기치 못한 합병증까지 더해져 투병하던 중 이날 스위스 취리히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66세다.

1952년 이탈리아 남부의 빈민촌에서 태어난 마르치오네는 1966년 온 가족이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윈저대학과 요크대학에서 각각 경영학 석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따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엔터치 등을 비롯해 유수의 기업을 두루 거쳤다.

특히 그는 1980년대부터 스위스에 있는 기업에서 경력을 쌓다가 2003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피아트 이사회에 합류, 이듬해인 2004년에 피아트 CEO 자리에 올랐다. 당시 피아트는 거액의 빚을 떠안아 휘청거리던 상황. 대주주인 아그넬리 가문의 움베르토는 위기에 빠졌던 스위스 서비스업체 SGS를 살려낸 마르치오네의 명성을 믿고 그를 회사의 구원투수로 발탁했다. 마르치오네는 CEO에 취임한 후 강성 노조와의 협의 끝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겨우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2008년 촉발된,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피아트가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 자동차 빅3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가 파산 보호를 신청하자 마르치오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시 대주주였던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로부터 크라이슬러의 지분을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크라이슬러는 2년 만에 파산 상태에서 벗어났고, 2014년에는 두 회사가 합병해 FCA로 다시 태어났다. 같은 해 피아트는 130억 달러에 가까운 부채를 청산하는 등 마르치오네의 승부수는 수년 새 두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마르치오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였다. 급변하는 업계의 특성상 생존하려면 ‘규모’가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에 그는 독일 오펠 인수와 GM과의 합병을 노렸고, 이는 늘 언론과 투자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였다. 올해 초에는 새로운 합병 파트너를 찾는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FCA의 주가는 지난 4년간 거의 4배나 뛰며 월가 애널리스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마르치오네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아그넬리 가문의 한 측근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마르치오네는 록스타였다. 문제는 록스타가 무대를 떠날 때 조명이 꺼지는 것”이라며 회사의 앞날을 걱정했다. 마르치오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 이탈리아 증시에서 FCA의 주가는 16% 넘게 폭락했다. 2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3분의 1 이상 줄었으며, 회사는 연간 매출 및 영업익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한편, 평소 라이벌이던 자동차 업계 CEO들도 이 날만큼은 한목소리로 마르치오네를 애도했다. 메리 바라 GM CEO는 “자동차 업계에 놀라운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했고, 디터 제체 다임러 CEO는 “자동차 업계가 진정한 거물을 잃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과 아주 친분이 두터운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PSA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는 “마르치오네는 우리모두에게 모범이 된 훌륭한 업계의 선장”이었다고 추모했다.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 솔직함, 열정을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리워할 것”이라며 “그는 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극찬했다.

월가는 마르치오네를 아주 열정적이고 지독한 일 중독자로 기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고위 인사를 만날 때도 최소 5대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고,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를 오가는 게 일상이었던 그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스웨터와 청바지를 거처마다 약 30벌씩 뒀을 정도. 에스프레소와 무라티 담배를 즐겼으나 지병 탓에 1년 전부터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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