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통일경제 핵심…동독 5000km 돌며 선행학습”
4·27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6·12 북미 정상회담, 9월 예정된 3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남북 통일 시계에서 금융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조 센터장은 “통일 경제의 국면에서 중소기업이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1990년 기업은행 조사부에 입행한 조 센터장은 북한 경제 연구와 함께 현재 IBK경제연구소 부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소기업 부사장으로 대북 사업을 총괄하며 북한에 다녀온 것만 해도 수십여 차례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5월부터는 ‘IBK남북경협지원위원회’ 위원과 ‘북한경제연구센터’의 센터장도 겸직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만난 조 센터장은 “북한을 5·24 조치(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2010년 발표한 대북제재조치) 이전과 같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칠 수 있다”며 “신뢰 구축 과정 없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을 욕심내서 돈만 보고 달려들면 대부분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남북경협의 핵심을 짚었다.
北도 개성공단서 기업경영 배워
- 김정은 체제의 남북경협, 과거와 지금 무엇이 다른가
“1988년부터 남북경협은 시작됐다. 그땐 북한에서 조개를 수입하는 등 기초적인 교역 수준에 그쳤고, 무역량도 몇천 달러밖에 안 됐다. 이후 2000년 정상회담을 거치며 경협 활성화의 계기가 됐고 무역에서 생산으로 협력 형태가 바뀌게 됐다. 5·24 대북 제재, 개성공단 폐쇄 이후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북한도 경제 개발이 그동안 안 됐던 이유를 나름 분석한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자기들 시각으로 경제를 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경제개발구를 확장하고 외국 기업 유치를 시작했다.”
-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본질적인 체제가 다른데, 북한의 경협 준비 상황은 어떻다고 보나
“시진핑-김정은 체제, 경제개발구를 만들어 둬도 성과가 안 나왔다. 대북 제재도 걸림돌이었지만 북한 입장에선 경제 개발을 해 본 사람이 없다 보니 경제 마인드가 확립되지 않았었다. 북한도 우리하고 경협을 할 때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인 논리를 내세웠다. 시장경제보다는 당의 지침이 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북한 관료들이 중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시장경제의 논리를 배우고 습득하기 시작했다. 남북경협도 옛날 5·24 조치 이전의 북한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경제협력을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 개성공단이 남북경협에 어떤 역할을 했나
“개성공단 이전에는 투자 기업의 자산 보장, 자금 송금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프라도 부족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10년 넘게 운영해 보면서 단순히 노동력만 투입한 건 아니다. 유통 시스템, 기업 경영 등을 옆에서 보면서 ‘외국 자본과 기업 유치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배우는 장이 됐을 것이다.”
- 개성공단은 언제쯤 다시 열릴까
“내년 1분기로 본다. 제재만 없으면 벌써 재개했을 것이다. 최근 대북 제재 유연화 조치가 많이 시행되면서 제재를 전면적으로 풀지 않아도 예외 사업으로 인정받아서 할 수 있도록 될 것 같다. 지금 100만 평 중 30%는 아직 기업 입주가 안 된 상태다. 지금도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들어가려고 준비 중인 중소기업이 많아 경쟁력이 무척 센 것으로 알고 있다. 경협 재개 시 제2, 제3 개성공단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로 본다.”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실 내달 개설
- 남북경협 시대에 기업은행의 역할은
“개성공단이 2년 6개월 넘게 중단돼 왔기에 안정화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우리 연구센터가 중소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기업 중 49.5%가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 개성공단 조성에 대해서도 58.3%가 ‘긍정적’이라고 답할 만큼 중소기업의 의지가 강하다.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중소기업들이 남북경협에 참여하면 국책은행으로서 지원에 나서 자금뿐만 아니라 정보 제공 등 컨설팅까지 패키지로 지원할 것이다.”
- 기업은행의 북한 진출 구상은
“9월 개설이 예정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소를 시작으로 남북경협 사업의 통로를 열 것이다. 개성공단 지점 개설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가 진전되면 평양 지점까지도 낼 수 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중 기업은행 거래 기업이 60% 가까이 되기에 앞서 중소기업과 현지 기업들을 지원하고 제2, 제3 개성공단에도 계속 그런 역할을 하겠다. 처음엔 지점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지역본부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 북한에서 직접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데, 사업 노하우가 있다면
“북한에서 새로 나오는 구호를 보고 정책 방향을 읽는 것이다. 또 새로 생기는 조직의 이름과 수장이 누가 오는지 파악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북한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때 실세를 파악해야 하는 것과 상통한다. 북한 진출 초창기에는 잘 모르다 보니 무조건 대표로 나오는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추후에 자꾸 결정이 번복되고 일의 진척이 더딜 때가 있었다. 영문을 모르다가, 한 번은 회의 후 차를 타고 가는 의전 서열을 확인한 결과 대표가 과장에게 차 문을 열어 주는 걸 봤다. 이후 그 ‘실세’ 과장과 대화하니 일이 빨리 풀렸다.”
김도진 행장과 4년 전 獨 사례 견학
- 북한의 생소한 경영 방식에 당황했던 에피소드가 있는지
“한창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이후 북한이 이제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거래하겠다고 선언했다. 당황했던 것은 환율 개념이 없다 보니 협상 시 1달러를 1유로로 등치시키는 것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인데도 이런 개념을 몰라 환율에 대해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또 북한은 투자받는 국가가 ‘갑질’하는 유일한 국가다. 기업인들이 투자하는데 ‘특혜를 준다’고 표현하고, 북한에 방문하면 ‘영광스러운 방문의 기회를 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 김도진 행장이 창립 57주년 행사에서 “남북 경협 시대를 선도하겠다”고 공언했다. 경협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 같은데
“4년 전 행장님이 부행장이던 시절 동독에 1주일간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동독 지역 5000㎞를 돌아다니면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어떻게 키웠고 금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훑어본 결과 동독지역 개발은 중소기업 육성이 핵심이었다. 한국의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인 서독의 독일재건은행(KFW)이 그 역할을 했다. KFW는 중기 지원에 70% 정도를 쏟아부으면서 8년 만에 자산이 3배 이상 성장했다.우리의 롤모델인 셈이다.”
-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앞으로 남북경협 단계까지 이르게 되면 금융위원회는 북한경제개발 핵심인 금융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또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IMF등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고, 은행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야 한다. 지금 북한 상황은 한국의 1970년대 초와 같은 농경사회다. 경협 인프라를 갖추고 기업들이 안정화하게 하기 위해서 정부, 은행, 기업이 따로따로 역할을 하는 게 아니고 동반자 모드로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조봉현 IBK북한경제연구센터장은
1964년생으로 동아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중소기업진흥공단 조사연구처 선임연구원을 거쳐 중소·벤처기업 부사장(경영 및 대북사업 총괄)을 지냈다. 현재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부연구소장 겸 북한경제연구센터장으로 재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