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누더기는 재질과 색깔, 형태가 각각인 천이 잘 어울릴 때 아름답다. 누더기를 이루는 천들은 저마다 생명력을 갖도록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나 각종 제도, 정책이 누더기가 돼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16일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에 대해 누더기 같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정책의 여러 헝겊과 조각이 한데 모여만 있을 뿐 서로 어울리거나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1년 이상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갈등과 분란을 키운 끝에 발표된 개편안은 그야말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태산을 울리고 흔들리게 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 잡은 꼴이었다. 교육부→국가교육회의→공론화위원회→국가교육회의→교육부, 이렇게 폭탄 돌리기를 한 끝에 최대 쟁점이었던 수능전형 비중은 ‘30% 이상 권고’로 어정쩡한 결론을 냈다. 그리고 수능과목 중 제2외국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정도다.
영어와 제2외국어는 절대평가, 국어·수학·사회·과학은 상대평가를 하도록 나눈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탐구과목 조합은 수백 가지가 돼 더 복잡해졌다. 혁신을 지향하면서 단순한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는 목표와는 정반대다.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개편안을 발표한 뒤 “공론화 과정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했지만 이 말은 비웃음만 샀다. 공론화는 혼란과 분란을 더 키웠다. 진보단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개혁 공약이 파기됐다”고 반발했고, 보수단체들은 “정시를 대폭 확대하라는 국민 요구가 무시됐다”며 김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를 지지해온 진보 교육단체들조차 “민주주의를 가장한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우스운 것은 ‘정시전형 30% 이상’ 기준을 지키지 않는 대학엔 예산(이른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정부 출범 이래 문교부-교육부가 줄곧 써온 수법이다.
이번의 대입개편안은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의 존재 이유를 더 회의하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만약 교육부가 없다면?” 하는 질문이 계속 제기돼왔다. 없다면? “그야 제일 좋지요”라고 하는 응답자가 많을 것이다. 교육부는 창의와 인성을 가꾸고 인재를 기르는 기제(機制)가 아니라 참견과 간섭으로 얼룩진 누더기 행정단위일 뿐이다.
그런데 행정의 위엄과 권위는 이미 죽었다. 포스텍처럼 ‘정시전형 30% 이상’ 지침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대학이 앞으로 늘어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교육부의 조치는 돈으로 대학의 자율을 해치고 각 대학이 그동안 축적해온 입시 노하우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제 대입시는 대학에 돌려주자. 돈과 행정권력을 무기로 대학 위에 군림하거나 학사행정을 일일이 간섭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정부가 주관해 대입 예비고사나 학력고사를 실시하고 그 뒤의 입시전형은 각 대학이 알아서 했던 대학별 고사로 제도를 바꾸더라도 지금보다는 혼란이 적을 것이다. 과거에 경험해본 바 있으니 대학별 고사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전제로 각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돌려주는 게 좋겠다.
2022년 입시안은 발표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이제 그만 물러나고 교육부는 2023년 이후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바란다. 이런 건 공론화위원회에 논의를 부쳐도 된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