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논란이 된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관한 감독기준을 내달 마련한다. 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비용을 재무제표상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점에 대한 판단이 핵심이다.
금융위윈회와 금융감독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제약‧바이오 기업 회계처리 투명성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와 회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회계감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 업계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등 약품 유형에 따라 연구개발 단계에서의 상품화 가능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차이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특성상 연구개발 단계부터 상품화가 될 때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금여력이 부족한 회사인 경우 상장유지나 자금조달 등의 이유로 연구개발비의 비용처리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애로점도 제기됐다. 이로 인해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주력 사업이 아님에도 단기간에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영위하면서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입장이다.
업계는 시가총액이 높거나 연구개발비를 충당할 만큼 자기자본이 충실한 경우에는 상장을 유지해주는 방안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스타트업‧벤처의 경우 재무실적 만을 요구하기 보다는 미래가치나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제약‧바이오 기업 사업보고서 기재 모범사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재항목 중 주요 계약, 핵심연구인력 등은 사실상 기업의 영업비밀에 가까운 사항이라는 점 등 국내 업계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회계처리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입증자료의 수준이나 판단과정 등에 있어서 감독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도록 과거 감리지적 사례, 업계 모범사례 등을 유용한 형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업계에서 협회를 중심으로 스스로 회계처리 시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적극적으로 공유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회계기준원과 학계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제시하는 감독기준은 회계기준 그 자체 또는 해석이라기보다는 감독 목적상 회계처리의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감독기준이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이 될 경우 새로운 규제로 작용할 수 있고, 국제회계기준에 위배될 소지도 있으므로 기준을 마련하고 운영함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회계처리하는 회계기준과 관련해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해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회계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내 회계담당자와 연구개발자 간 또는 기업 및 이해관계자들 간의 소통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회계기준원은 이와 관련해 필요한 경우 플랫폼 역할을 맡을 계획이다.
금감원은 회계기준에 모호성이 있음에도 시장 참여자들 간의 회계처리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우선 올바른 회계처리 관행이 정립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제약‧바이오 업계에 올바른 회계처리 관행이 정립될 수 있도록 감독기준 마련뿐만 아니라 감리사례를 제공하는 등 향후 회계감독방향에 따른 세부 추진방안을 적극적으로 시행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업계, 회계법인 등과 추가협의를 거쳐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관한 감독기준’을 9월까지 조속히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26명이 참석했다. 업계에서는 코스닥 상장 제약‧바이오 기업 5개사 임원과 제약바이오협회가 자리했다. 또 4대 회계법인의 품질관리실장과 정도진 교수, 이영한 교수 등이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