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맛’ 동해산 문어 ‘쫄깃한 식감’ 남해산 문어…‘아는 맛’에 길들여진 것일 뿐 “모두가 최고”
문어 때문에 곤욕을 치른 선조들
세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은 경상도 감사 재임 시절, 진헌(進獻)하는 문어가 정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3년 후 다시 임용되기는 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가 문어 하나 때문에 관직을 잃었던 것이다.
세종 때 좌의정까지 오른 신개(申 )도, 대사헌 재임 시절 문어 두 마리를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로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다.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신개는 세종에게 사직을 청하기도 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고성 군수 최치(崔値)는 나라의 창고 곡식을 도둑질 해먹었는데, 정작 사건이 터지자 창고지기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런데 이 창고지기가 수사 중에 죽어버렸다. 여러 번의 재조사를 거쳐 진범이 최치임이 밝혀지자, 최치는 국문 과정에서 뇌물로 문어 두 마리를 대사헌 신개에게 주었다고 자복을 한 것이었다. 이 자복으로 인해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다. 새롭게 조사를 해보니 이 역시 거짓 자복임이 드러나 신개는 혐의를 벗게 되었다.
문어가 도대체 뭐관대 이런 황당한 사건들이 터졌을까? 당시 문어는 중국 황제에게도 바치고 따로 무역도 했으며,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는 중요한 해산물 중 하나였다. 세종실록을 보면 “예조에서 계하기를, 이번 사신이 건어물을 무역할 것을 의뢰하여 왔으니, 청컨대, 함길도와 강원도에 건연어(乾年魚)·대구어(大口魚)·문어(文魚)·고도어(古道魚) 각색 해채(海菜) 등 물품을 때맞추어 미리 준비하게 하고, 또 봄철에 준비한 건어(乾魚)도 딴 곳에는 사용하지 말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1424년). 함경도와 강원도의 문어는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며 대중 수출품이었던 것이다.
헷갈리는 이름, 지역마다 제각각
문어는 서해 남쪽 바다에서도 소량 잡히지만, 주로 남해와 동해에서 어획된다. 우리나라의 문어 앞에는 접두사가 붙어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대문어, 피문어, 참문어, 돌문어, 왜문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마다 문어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다르기에, 문어 맛을 보려는 사람들은 헷갈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뭐가 피문어고 뭐가 돌문어야?” 하고 묻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어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문어는 동해산과 남해산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가장 쉽다. 약간 붉은 빛이 돌며, 삶으면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동해산 문어다. 50㎏에 이르는 초대형도 있다. 이 동해산 문어의 공식 명칭은 대문어지만, 서울의 시장에서는 피문어라 부른다.
제사상에 문어를 꼭 올리는 경상북도에서는 대문어를 참문어라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 가면 ‘참문어 전문’이라는 간판이 많이 붙어 있다. ‘참’이라는 수식어가 좋은 것을 의미하기에 문어에 ‘참’자를 붙였을 것이다.
통영이나 여수와 같은 남해에서는 남해 문어를 돌문어라 한다. 이것의 공식 명칭은 참문어다. 동해산 대문어는 수명이 3, 4년 이상이고 남해산 참문어는 2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남해 여러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돌문어’가 맛있다고 하고, 동해안 사람들은 남해 돌문어가 질겨 맛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같은 동해 문어라 해도 7, 8㎏ 이상 나가는 큰 문어가 맛있다는 사람이 있고, 1㎏ 정도의 작은 문어가 야들야들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 근해에서 잡은 돌문어만이 진짜 문어라고 주장한다. 입맛이란 각자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좀 헷갈릴 거다. 정리를 하면 이렇다. 동해산 문어=대문어=피문어, 남해산 문어=참문어=돌문어(왜문어)다. 동해산 문어는 대형종으로 자라며 수명도 길고, 남해산 문어는 1, 2년생이며 당연히 소형이다. 단 말린 문어, 즉 건문어도 피(皮)문어라 한다.
문어는 대개 숙회로 먹지만 색다른 요리법도 있다. 울릉도에 가면 울릉도의 유명한 약소와 울릉도에서 나는 문어로 ‘문어소고기볶음’도 한다. 이 문어 요리가 18세기 서적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오는 문어 조리법과 가장 비슷하다고 할 것인데, ‘산림경제’에는 문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달궈진 솥에 기름과 술을 두르고 재빨리 볶아 반쯤 익으면 장물과 양념을 넣고 끓어오르면 먹는다고 했다. 울릉도에서는 여기에 소고기를 첨가한 것이리라.
제주도나 전라도에서 먹는 문어죽도 있다. 문어를 깨끗이 씻어 절구에 찧고, 쌀은 참기름을 둘러 볶은 다음 물과 짓이긴 문어를 넣어 끓여 내는 게 바로 문어죽이라고 한다. 이때 문어는 다시 건져내어 잘게 찢어 죽에 넣는다고 한다.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문어 해장국도 있다. 무와 문어를 넣고 끓인다. 문어가 익으면 건져내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다음 다시 국에 넣어 푹 끓이고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파와 마늘로 마무리하는 음식이다. 의외로 시원하고 맛이 깊다. 오징어국과 비슷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예로부터 식감 좋은 잔치 필수음식
폭염이 한반도를 달달 볶고 있는 어느 여름날, 피서를 겸하여 문어 맛을 보기 위해 강원도 고성(高城)으로 떠난다. 강원도 고성 하면, 7번 국도를 따라 금강산 가는 길에 위치하는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미치는 가장 북단의 고장이다.
서울~양양 고속국도를 타고 가다가 인제IC에서 국도를 타고 진부령을 넘어 화진포로 간다. 화진포 호수의 고즈넉한 풍경과 소나무 숲과 이승만별장의 호젓함을 뒤로 하고 바로 막국수집(화진포 메밀막국수)으로 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눈의 호사보다는 입의 호사가 우선임을 실감한다.
다행히 막국수는 맛있었다. 메밀향이 살아 있고, 돼지 수육도 고소했다. 좀 아쉬운 것은, 새우젓을 달라고 하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 정도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서해가 원산인 새우젓을 왜 동해의 북단에서 찾느냐고 핀잔을 준다.
배가 부르니 휴전선 바로 아래 마을인 명파리까지 구경을 갔다가 대진항으로 간다. 대진항은 대규모로 어로활동을 하는 고성의 가장 북쪽 어항이다. 80여 척의 소형 어선이 사시사철 문어를 잡는다. 대진항의 문어 잡이는 인조 미끼에 줄을 달아 바다 바닥으로 내리고 위에 부표를 달아 놓았다가 부표가 움직이면 낚아채서 올리는 방식이다. 많이 잡힐 때는 하루에 약 3000㎏까지 경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동해 문어의 메카라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대진항 여기저기에는 빛 바랜 문어축제 현수막이 붙어 있다.
드디어 문어를 맛볼 차례. 찾아간 곳은 대진항 내에 자리한 잠수부횟집(033-682-4111, 대표 최웅남). 수족관에 살아 있는 문어가 양파망에 담겨 얌전하게 숨을 쉰다. 회와 2㎏ 정도 되는 문어를 주문한다. 여름철 동해의 회는 어느 집에 가도 비슷하다. 양식 광어와 우럭이 주종이다. 참가자미(노랑가자미)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 문어가 데쳐져 나온다.
싱싱한 문어의 식감이 좋다. 살짝 덜 익어 오히려 부드러우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비릿한 바다 맛도 느껴진다. 경상도 안동이나 포항에서 삶아주는 맛에 익숙한 한 친구는 비리다며 문어 중 일부는 조금 더 데쳐 달라고 주문한다. 역시 사람마다 길들여진 입맛이 다른 것이다. 초장보다는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는 문어도 별미다.
야외 테이블에서 광대한 동해를 바라보며 문어 안주로 술을 마신다. 문어는 예로부터 맛있는 안주의 대명사였다. 맛있게 삶아진 문어에, 동해의 바람과 풍광마저 더해졌으니, 이보다 좋은 게 인생에 얼마나 더 있으랴.
조선 중기의 시인 이응희(李應禧·1579~1651)는 문어를 이렇게 노래했다.
둥근 머리에 길이가 몇 척
모습과 빛깔이 희한하여 알기 어렵네.
가르면 금빛 액이 나오고
삶으면 옥색 기름이 지글거린다네.
용을 삶은들 이보다 귀하겠나,
봉황새를 끓여도 기이할 것 없어라.
온 세상에서 큰 잔치를 열 때면,
좋은 안주로 반드시 널 찾는다지
문학평론가·(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