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고용부진, 무역분쟁, 신흥국불안…“스탠스 바뀐게 아니다”가 “바뀌었다”로 들려
31일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가진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통화정책 스탠스는 바뀐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말에 대한 무게감은 한참 떨어졌다. 소비자물가와 고용지표가 지난 7월 전망한 수치보다 낮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금리동결 이유로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글로벌 무역분쟁,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신흥국 금융 불안 등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 수요측 물가상승압력이 크지 않은 점"을 꼽았다.
앞서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50%로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25bp 인상 이후 9개월연속 동결행진이다. 관심을 모았던 소수의견 증가여부는 지난달 인상 소수의견을 밝혔던 이일형 위원에 그쳤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7월 전망경로를 유지한다고 했는데, 현재 고용지표도 그렇고 소비자심리지수도 빠르게 꺾이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는 없나?
“성장이든 물가든 경제흐름에는 상‧하방 리스크가 같이 존재하는 게 늘 있는 현상이다. (한은은) 하방 리스크를 많이 거론했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미‧중무역 분쟁이나 고용부진은 성장을 낮추는 리스크가 될 것이다. 반면 정부의 재정정책 운영이나 주요 기업의 투자확대 기회 등은 경기를 위쪽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다. 7월 전망보다 하방 리스크 상방 리스크 불확실의 경로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어느 것이 크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면밀히 점검해서 정책 운용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 금리 인상 시점과 관련해 초반에 금리를 올려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지난해 11월 금리를 올리고 그 후에 완화정도를 줄여나간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커진 것이 사실이다.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됐고 신흥국 금융 불안이 터져 나왔다. 미‧중 무역 분쟁이 한층 심화된 것도 6월이다. 한은이 연초부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불확실성 전개 방향을 좀 더 지켜보고, 데이터도 지켜보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 바란다. 앞으로도 경기와 물가, 금융안정 상황까지 같이 고려해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낮은데, 물가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정부정책 중 물가압력을 낮출 요인이 있는지. 추산한 게 있다면?
“국제 유가 상승은 분명히 물가를 올리는 요인이다. 1% 중반에 소비자물가상승이 머무는 건 정부정책 효과가 컸다고 본다. 전기료 외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승용차 개별 소비세 인하 등 정책효과에 따른 물가하락 효과가 적지는 않았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언급하기는 어렵고 상당부분 소비자물가상승을 낮추는 것으로 작용했다. 전체 수준은 낮아졌지만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그 안에 물가와 환율상승이 작용할거고, 기저효과도 있다. 종합해보면 앞으로 4/4분기는 1%대 후반수준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 정책 영향으로 상승속도는 7월 달에 본 것보다 더딜 것으로 예상한다.”
△ 최근 고용내용에 대해 한은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7월 중 취업자 수가 5000명 증가하는데 그치면서 고용상황이 부진했다. 일부 업종이 부진했고 구조조정도 있었다. 산업구조 인구구조의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래도 아직 예상을 밑 돌기 때문에 7월에 봤던 18만 명 수준에서 하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고용전망치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10월에 다시 언급하겠다.”
△ 미‧중국의 무역 분쟁과 신흥국 금융 불안이 한은이 지적한 대외이슈다. 전자는 금리 인상을 어렵게 하는 평가가 많고, 후자는 자본유출 우려로 연결된다는 지적이 있다. 엇갈린 상황에서 한은은 어디에 무게를 두고 있나?
“다양한 대외 리스크 요인이 있어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미연준의 금리인상, 선진국의 통화정책 과정 등은 신흥국 자본유출을 촉진하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중 무역 분쟁은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우려를 증폭시키면서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리스크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앞으로 전개 속도에 따라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모니터링 하고 있다. 앞으로 정책결정과정에서 반영하겠다.”
△ 정부가 고용을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한은 통화정책은 고용을 명시하지 않는다. 통화정책 결정시 고용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사실상 고용이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 있어서나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 운영하는 데 고용은 직접적인 게 아니라 다른 변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차원에서 판단한다. 국회에서 고용안정을 한은의 설립 목적으로 추가하라는 법안도 제출돼 있고 일부 학자들도 한은이 고용안정을 하나의 큰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용을 설립목적에 두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 일부 지표 둔화에도 정책여력 확보를 위해서 금리를 미리 인상할 수 있는가?
“정책여력을 국회에서 언급했지만 질의답변 과정에서 하나의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다. 고용을 비롯한 지표가 부진하게 나오고 대‧내외 여건이 안정적으로 가다보니까 우려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그러한 리스크가 높아졌지만 한은이 경기가 7월 봤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잘 지켜보고 정책운용에 잘 반영하겠다.”
△ 최근 집값이 상당히 오르고 있다. 시중 유동성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지, 아니면 주택영향 자체라고 보는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수급불균형 문제도 있다. 일부 지역의 개발 계획도 있고 거기에 따른 가격 확대도 있다.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대체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점도 있다. 어느 요인이 더 크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렇긴 하지만 최근 빠른 상승은 다른 요인 즉, 지나친 개발계획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풍부한 유동성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앞서 금융안정차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맥락이 동일하다.”
△ 한은이 전망하는 경제성장률은 2.9%인데, 최근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조정 후에 금리 인상이 동반으로 이뤄지는지.
“조정여부는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하겠다. 현 단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흐름은 이어가지 않겠는가…. 물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물가도 점차 목표 수준에 가까이 간다는 전망은 유지하고 있다. 더 점검하겠다.”
△ 고용부진, 집값 상승 등의 문제를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통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성장 물가로 대표되는 총 수요를 안정화시키는 수단이다. 그래서 총수요정책이지 구조적 측면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도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통화정책으로 쏠리는 부담을 고려해 언급한 적이 있다. 통화정책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고용부진이라던가 주택시장 과열 문제에 있어서 경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대응하고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기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기에 통화로만 대응하고 해결하기는 어렵다.”
△ 가계부채가 소득증가율 상승을 넘어섰고, 서울 중심으로 집값도 급증세다. 규제를 하는데도 잡히지 않는다. 금융불균형누적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한은이 조금 더 용인 할 수 있다고 보는가?
“가계부채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거시건전성 정책의 강화라던가 시장 금리의 상승압력 등으로 앞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차주의 소득이나 자산, 비춰본 상황능력이 전체적으로 건실하고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도 양호하다. 그렇지만 가계부채 총량 수준이 이미 높은 수준에 와있고 가계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웃돌고 있기에 금융불균형 정도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느 시점에 가서 용인할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없겠지만, 금융불균형의 축적은 방지할 필요가 있다.”
△ 청와대에서 금리를 개입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청와대 관계자 발언이 있고나서, 시장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채권금리 변동성도 커졌다. 배경을 파악해보면 청와대 관계자 발언은 큰 고려 없이 기자들과의 대화하면서 나온 원론적인 얘기다. 통화정책 방향을 암시하거나 개입하거나 등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본다. 간혹 이런 발언이 시장에 영향을 주고 그에 따라 통화정책 결정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고 조심해야 한다. 금통위원들은 거시경제상황 금융안정 등을 우리나라를 보고 판단하지, (그런 발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 고용부진에 대해 한국은행은 구조적 요인이라고 보지만 시장은 다르게 본다.
“고용부진의 원인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구조조정은 올해 말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금년에도 큰 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른 협력업체의 어려움이 여전히 많이 작용하고 있다. 그 전부터 지속됐던 자동화 투자 속도가 더 빨라진 것도 사실이다. 최저임금도 비용 영향으로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계량적으로 어느 것이 더 영향을 줬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일부 업종의 서비스, 자동차 조선소 업황 부진, 해외여행객 급감에 따른 부진들이 상당부분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얼마냐’라는 분석은 가능하지 않다.
△ 금리 인상에 대해 소수 의견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상하지 않겠다는 의견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있어서 짚어봐야지만 현재 판단에선 잠재성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길어지면 목표수준 아니면 1% 후반으로 갈 것으로 예상한다. 통화정책은 경기 물가도 보겠지만 금융안정에 유의할 것이다.”
△ 미연준은 9월, 10월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한‧미 금리차가 100bp로 커진다.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
“금리격차는 기존과 달라진 것은 없다.”
△ 한은은 구체적인 인상 시그널이 없는 거 같다. 10월과 11월이 남았다.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인상이 되나?
“잠재수준의 성장세, 목표수준의 물가가 달성하면 완화 정책하겠다. 기본적으로 그 스탠스의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잠재성장의 성장세가 현재로서는 성장 흐름을 본다. 좀 더 짚어보겠다.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있으니까…. 아직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가는 전망했던 것보다 더 낮아졌지만 정책적 요인이 반영됐으니 그런 부분을 감안할 것이다. 중기적 관점에서 보면 2% 후반으로 지금보다는 상승흐름을 볼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모든 것을 조금 더 짚어보겠다는 거다. 금융안정에 대한 유인 필요성은 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월이냐 11월이냐 1월이냐라는 답은 드리기 어렵다. 기존의 통화정책 입장은 바뀐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