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융 현주소와 통일시 미칠 영향은
남북이 18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전격 합의하자,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금융 산업 교류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 북한 금융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북한 금융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남북 금융 교류와 나아가 통일 시 한국 금융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무너진 북한 금융체계, 암시장 중심에서 탈피해야” =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1990년대 이후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계획경제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암시장이 시장경제 기능을 대신하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금융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KIF)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의 금융 역할 강화 필요성 및 방안’에서 북한 경제 문제점에 대해 “국영기업소의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해 충분한 물자를 공급하지 못함에 따라 암시장 등 비공식 시장에 유휴자금이 형성됐다”며 “이에 인플레이션이 확대되는 한편, 국영판매소의 매출 감소로 인해 정부의 세수가 크게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기존 금융체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국영기업소 생산이 줄어들자 세수가 줄어든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경제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부족한 예산을 새 화폐 발행분으로 메꾸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 경제 회복을 위해선 은행 역할 강화를 통해 은행으로 과도한 유휴자금을 흡수하고, 북한 정부가 이 자금을 사용토록 해 정부의 악화된 재무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5차례 화폐개혁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악영향만 끼쳤다고 봤다. 그는 “화폐개혁 과정에서 현금과 저축 보유에 따른 손실을 경험한 주민들이 은행 저축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예금금리는 3%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상태라 주민들이 여유 자금을 저축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북한에서 원화보다 환금성이 높은 물건이나 달러, 위안화 등 외화를 선호하는 현상은 이 같은 국내 경제 상황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금융 역할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우선 은행 저축에 대한 예금자의 신뢰를 높이고 예금 금리를 현실화해 저축 확대를 통한 유휴자금 흡수가 필요하다”며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므로, 북한 은행은 예금자가 필요시 즉시 인출할 수 있도록 하고 현금과 예금을 보유한 주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화폐개혁 역시 신중하게 실시하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북한 금융 제도 개혁의 첫걸음으로 상업은행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중앙은행에 종속된 상업은행에서 벗어나 상업은행이 기업소가 필요로 하는 자금을 대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상업은행을 신설하는 과정에 세계은행(World Bank)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가 참여해 북한 주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체제 변화 적극적 지원할 곳은 한국… 주요 인프라 투자 필요” = 북한이 이른바 ‘베트남식’ 개방 경제체제로 전환을 꾀하면 한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북한 경제개혁을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 경제지원은 한국에도 큰 부담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14년 펴낸 ‘북한 은행시스템의 변화와 체제전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총국민소득(GNI)은 1조1354억 달러로 북한 GNI 297억 달러보다 38배 더 크다. 이는 1989년 독일 통일 직전 서독의 GDP가 동독의 6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더 큰 수치다.
하지만, 북한의 통계 자체가 불확실성이 커 통일 이전까지 최대한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한국에도 더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해당 보고서는 “북한의 금융 개방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우리나라는 북한에 대한 투자와 북한 기술, 자금 등을 원조해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에너지와 교통, 금융 등 필수 인프라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내다봤다. 특히, 외국의 공적개발기구 설립 사례를 참고해 통일에 대비한 정책금융기관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역량을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상업성을 전제로 체제 전환국 지원을 위해 설립된 금융기구와의 협조융자를 늘려가면서 경험을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 상업은행이 북한과 협력에 앞서 체제전환국에 먼저 나가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유럽과 러시아,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체제전환 국가에 진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금융시장 개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통일금융 전문인력 양성과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유도 방안도 해법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통일금융은 전문인력 양성이 어려운 분야지만, 과거 동유럽과 구소련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국제금융기구에 관련 지식이 축적돼 있을 것”이라며 “통일 관련 국제금융기구와 인적 교류를 강화해 해당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련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전문인력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직접 교류가 제한적인 만큼 중국과 정책협의를 전략적 수준으로 높여 북한에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언급됐다.
끝으로, 외부적 접근과 함께 북한 내부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선 북한 은행 시스템의 자체 회복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만약 북한의 은행 시스템 개혁 시도가 이뤄지면, 한국은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유도해 필요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가능하도록 국제 협력 방안을 앞서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밋빛’ 접근은 금물… 통일 시 한국 금융에 미칠 영향은? = 독일은 통일 이후 경제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지만, 아직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북한과 통일되면 통일 독일의 사례를 학습한 시장 참여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일 임박 시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에 대비해야’라는 논평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박 위원은 “(통일 한국의 경기침체를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며 “더욱이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은 통일 이전, 특히 통일이 임박하는 시기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박 위원은 외화 유동성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화보유액이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경험한 대규모 자본유출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최대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외채규모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제2선 외화보유액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선 양자 간 통화스와프와 아세안 + 한·중·일 국가 간 통화스와프 합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가운데 양자 간 통화스와프는 당사국 간 정치 이슈가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크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역시 필요 자금지원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제조항이 있기 때문에 통일 이전에 협약국과의 협상을 미리 맺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