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보험료 5.2兆 2년 만에 36.5%↓... 2008년 금융위기 수준과 비슷
경기 변동과 맞물려 움직이는 보험 지표들이 악화하고 있다. 새로운 보험 가입을 꺼리고, 기존 계약을 해지하며, 보험사를 통한 ‘불황형’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부 지표들은 2008년 금융 위기의 ‘암흑기’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보험상품의 기본 구조는 미래의 특정 사건이나 시점을 대비해 현재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데, 미래를 대비해 돈을 쓰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소비자들이 보험 가입을 꺼리고, 기존에 들고 있던 보험들을 해지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중에서도 특히 위험에 대비해 가입하는 보장성보험의 비중이 적은 생명보험사가 경기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경기 침체에 서민들의 최후 자금까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미래 대비 여력 없어”… 초회보험료·신계약 급감 = 11일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생보사들의 초회보험료는 5조2692억 원이었다. 2016년 상반기 8조2326억 원이었던 것이 2년 만에 36.5% 줄어든 것이다. 초회보험료란 보험을 새로 가입한 뒤 처음으로 납입한 보험료를 말한다. 초회보험료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 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초회보험료 감소 폭은 2008년 금융위기 전후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2009년 상반기 생보사들의 초회보험료는 1조2973억 원이었다. 2007년 2조3630억 원에서 2년 새 45.1% 줄어든 셈이다.
그중에서도 저축성 보험의 초회보험료는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2007년 상반기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저축성 보험의 초회보험료가 16.8% 줄어든 데 비해, 2018년 상반기 초회보험료는 2년 전보다 62.1%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 신계약 감소는 새 회계기준(IFRS 17) 도입을 앞두고 보험사들이 저축성 보험 줄이기에 나선 영향이 크다“면서도 ”최근 유독 저축성 보험이 급감하는 것에는 경기 악화의 영향도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신계약 건수는 작년 한 해 동안 1615만 건을 기록했다. 2년 전 1726만 건보다 6.5% 줄어든 수준이자,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2102만 건과 비교해도 적다. 다만 감소 폭은 2007년에서 2009년까지 18.9%였던 것과 비교하면 보다 완화된 수준이다.
◇해약 해지환급금·약관대출도 역대 ‘최대’ = 이처럼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꺼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존에 들고 있던 보험까지 깨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보험상품은 만기까지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간에 깨면 가입자가 무조건 손해를 보는 구조를 띤다.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보험을 깨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방증이다.
올 상반기 생보사들이 보험 해약에 따라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22조83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해지환급금은 2015년 16조1077억 원, 2016년 16조4551억 원, 2017년 19조2221억 원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조6609억 원, 2010년 5조7185억 원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이와 함께 이른바 ‘불황형 대출’이라고 불리는 약관대출도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약관대출이란 계약자가 가입한 보험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70∼80%의 범위에서 수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대출 절차가 간편하고, 이자도 낮아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을 중심으로 거래된다.
올 상반기 약관대출 잔액은 47조58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6.8% 증가했다. 증가 폭 또한 2017년 3.6%, 2016년 2.3%, 2015년 0.7% 등 매년 커지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증가 폭은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7.5%, 12.6%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