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전처 살해사건, 헤어진 여친과 그 가족 살해사건, 예비신부 살해사건은 어느 게 더 충격적이냐고 묻듯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PC방과 예비신부 사건의 경우 우발성이 강하다면 전처 살해와 전 여친 일가 살해는 준비된 범행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어이없고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전처 살해자는 결혼 후 20년간 아내를 폭행했던 사람이다. 전처의 차에 위치 추적장치를 달아 소재를 파악하고 쫓아다니며 괴롭혀온 노력으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 그 가엾은 여성은 3년 전에야 겨우 이혼한 뒤 여섯 번이나 이사를 하고 휴대폰 번호를 수시로 바꾸고도 끝내 목숨을 잃었다. 딸이 아버지의 사형집행을 청원할 정도니 그는 애초부터 가족들과 철저히 격리됐어야 할 사람이었다.
이 범죄로 여성들의 공포와 불안은 한층 더 커졌다. 우리나라 여성은 거의 나흘에 한 명꼴로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여성의 전화 집계). 작년 한 해 동안 피살자가 85명, 살인미수도 188명이나 된다. 보도된 것만 그렇다.
그런데 가정폭력은 신고해도 공권력에 의한 격리조치가 미흡하고, 조치를 어겨도 부과되는 과태료(300만~500만 원)가 미약하고, 그나마 부과된 사례가 21%선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처럼 가정폭력 행위자에 대한 의무체포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헤어진 여친 살해사건도 여성들의 불안을 키워주었다. 범인은 한동안 동거까지 했던 여친 등 일가족 4명을 차례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남들과 자기를 죽인 그 18시간 동안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파트 주변의 방범카메라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전기충격기 사용방법을 검색한 그 노력으로 다른 건전한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 대책 없고 구원받지 못한 두 영혼의 끈질기고 모진 ‘복수’가 끔찍하다.
그런데 국민의 반응이 훨씬 높고 엄벌 요구가 비등하는 것은 이들 두 사건보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다. 청와대 청원자가 10여 일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 앞의 두 사건과 달리 범죄의 우발성이 오히려 이런 반응을 더 키운 것 같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PC방에서, 누구든 아차 하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작용한 데다 녹화된 CCTV영상이 충격을 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영상은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범죄에 현실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피살자를 살리려 애썼던 담당 의사의 글은 사건의 파장과 일반 국민의 정서를 잘 대변한다. “이렇게 인간을 거리낌 없이 난도질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고인은 평범한 나와 같아 보였다. 환자를 진료하고 돌아가는 퇴근길에 불쑥 나타나는 칼을 든 사람을,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목덜미와 안면을 내어주는…. 그것은 밥을 내던 식당 주인일 수도 있고…. 고객을 응대하던 은행 직원일 수도 있고…. 그렇게 직업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여러분일 수도 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건을 직접 목격한 나는 (많은 사람들의)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서도 참담했다. (중략)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죄스러운 느낌, 참담한 느낌, 악한 본성에 대항할 수 없는 무기력, 그의 목덜미에 들어갔던 비현실적인 자상(刺傷)과 벌어져 닫히지 않는 손가락. 모든 죽음이 그렇지만, 어떤 죽음은 유독 더 깊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렇다. 처벌 강화, 제도 보완을 위한 법령 개정은 물론 이웃과 사회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노력은 그것대로 다 해야 하겠지만 실상 우리 모두는 분노하고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무기력하고 답답하다. 이 살인사회, 울혈(鬱血)사회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쌓인 분노를 해소하는 길은 대체 무엇인가. 자꾸 무기력을 절감하며 되돌아보고 괴롭게 질문하며 길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