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의 시대. 이참에 취미생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호회 하나 있다면 금상첨화. 하지만, “‘동호회 찾아요!’라고 길 한복판에서 외칠 수도 없는 일. 비슷한 연령과 실력에 맞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를 찾는 일이 그리 쉬울 리 없다.
이같은 수요를 반영하듯 최근 동호회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제법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에서 벗어나 건전(?)하고도 작은 일탈을 소망하는 두 명의 기자가 앱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동호회를 찾기로 한 것은 지난주 수요일. 학교를 졸업한 뒤, 하루 종일 운동이라고는 노트북 위에 손가락만 튕겨대는 게 전부라는 이들이 찾은 앱은 바로 ‘소모임(so,moim)’이다.
국내 동호회 앱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소모임'은 운동·공연·음악·독서·요리·사교 등 약 30여 가지의 카테고리를 제공한다. 여기서만 매주 5000여 개의 정모가 열린다고 한다.
김정웅 기자는 농구 동호회, 나경연 기자는 등산 동호회를 앱을 통해 가입했다. 이어 지난 주말 오프라인 모임에 다녀온 뒤, 한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역시 수다는 근무시간에 해야 제맛이다.
◇동호회 앱은 ‘사교 모임’을 지향하나?
김정웅 기자(이하 김) : 간략한 이용후기랄까? 어땠어, 소모임 앱은?
나경연 기자(이하 나) : 동호회 가입할 때 자기소개부터 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혹시 선배는 농구 모임 가입할 때 신상정보 뭐뭐 쓰셨어요?
김 : 나는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 직업, 포지션, 그리고 키 정도? 키가 조금 웃기긴 한데, 아무래도 농구는 키가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다 보니까.
나 : 제가 간 등산 동호회도 비슷했어요. 사는 곳, 나이, 이름 정도. 그건 그렇다치고 프로필 사진이 꼭 있어야 했는데...선배 이거 좀 그렇지 않던가요? 멀리서 전신샷을 찍었더니 가입이 거부되던데요? 그래서 가까이서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찍으니 통과가 되더라구요. 근데 이거 왜라고 생각해요?
김 : 글쎄...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 아닐려나? 남녀 간의 ‘만남의 장’ 같은 걸 열고자하는...?(웃음)
나 : 하나 더. 제가 간 모임은 가입하면 게시판에 ‘처음 가입한 나경연입니다~’하는 식으로 자기소개 글을 올릴 수 있게 돼있어요. 거기에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도 있구요. 근데 아무래도 ‘좋아요’가 있다 보면 개수도 좀 신경 쓰이고 그렇죠. 그게 곧 새로 가입한 사람의 인기의 척도 같아보이기도 하구.
김 : 확실히 좀 마음 쓰이게 하는 요소가 있네. 연령대는 어땠는데?
나 : 등산이라고 하면 어쩐지 40대 넘은 중장년층이 많을 거 같잖아요. 근데 실제론 거의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정도였어요. 농구모임은요?
김 : 여기도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 애초에 이 앱을 사용하는 연령층이 이 정도로 한정돼 있는거 같아서 어느 모임을 가도 대략 이정도 연령대였을 거 같았어. 또 이용 중에 느꼈던 점이 있다면?
나 : 어느 모임이던 몇월 몇일 어디서 몇시에 만나는 모임이 있고, 누구누구 참석하는지 볼 수 있게 돼 있잖아요? 근데 이러면 “오늘은 재밌는사람 오나?”하면서 사람을 봐가며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남자 정원, 여자 정원을 따로 두고 마감해서 성비를 맞추는 듯한 모임도 봤어요. 앱의 이런저런 구성을 봤을 때 약간 대다수의 모임이 콘텐츠 자체보다는 ‘사교 모임’에 가까워지게끔 디자인됐다고나 할까?
김 : 남녀 각각 정원은 농구모임에도 있더라(웃음). 아니 왠만한 스포츠 모임엔 다 있었던 거 같기도하구. 아니 그보다 정말 ‘소모임’을 통해 참여해본 실제 등산 모임 자체는 어땠어? 우리 생각처럼 ‘만남의 장’?
나 : 근데 이게 반전인데, 흔히 동호회 중에서도 ‘등산 동호회’에 갖는 편견이 있잖아요. 불륜의 온상...이라는 식의? 근데 그런 남녀 간의 애정전선 비슷한 건 전혀 없었어요. 그냥 놀자판이 아니라 산 일대 쓰레기 줍는 봉사도 했어요. 하산하고 점심엔 막걸리가 아니라 콜라, 사이다만 먹었다니까요?(웃음)
◇연애목적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보다 쉽지 않을걸?
김 : 근데 일단 ‘만남의 장’이 되려면 사람들이랑 좀 친해져야 될 거 아냐. 처음으로 가본 등산 모임에서 많이 친해 졌어? 어울릴수 있게 기존 멤버들이 많이 챙겨주던가?
나 : 에이~ 하루 만에 친해지는 건 무리지요. 그리고 학교도 아니고 누가 챙겨줘요. 아무래도 신 멤버랑 구 멤버랑 친밀도 차이가 아주 크고, 딱히 원래 계시던 분들이 그 차이를 좁혀주려고 대단히 노력하는 거 같진 않았던 것 같아요. 가입 멤버는 200명인데 참가하는 사람은 10여 명인게 이래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해요. 선배는요?
김 : 사실 내가 간 모임에서는 기존 멤버들이 말도 많이들 시켜주려고 노력해주긴 했어.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일단 나는 오늘 처음 본 분들이고 이게 모임 자체가 만들어진지는 5년이나 됐더라구. 보통 이런 모임에선 5년간 공유해온 기억들이 있고 대개 밥 먹으면서는 그런 얘기들을 하잖아. 하다 못해 저번주 모임 얘기라도. 그런걸 같이 공유할 수가 없으니 대화 주제도 한정적이고 껴주려고 해도 끼기가 어렵더라구. 아 근데, 뜬금포 질문. 혹시 대학 다닐 때 학교 생활 어땠어? 실례지만 인싸? 아싸?
나 : 응? 갑자기? 저는 과 학생회도 했었고, 총학생회도 참여해본 적 있어요.
김 : 누가 봐도 ‘인싸’네. 그럼 하나만 더. 보통 사람 만나면 말을 건네는 타입인가요, 듣는 타입인가요.
나 : 대체로 건네는 타입인거 같은데요?
김 : 그래서 인싸인거구나. 나는 학교 다닐 때 ‘아싸’ 스타일이었어. 그리고 남에게 말걸기보다 대체로 듣는 타입. 나같은 사람이야 이런 모임 처음가면 좀 못 어울릴 수 있는 거 같긴 하거든? 근데 봐봐. 나 기자는 원래 남한테 말거는 타입이고 총학생회도 해본 인싸인데도 끼기가 굉장히 뭐했다는 거잖아. 이게 이 앱이나 우리가 간 모임이 배타적이었다기보단, 처음 가면 어디든 끼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사회의 모임의 생리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하다 못해 교회라던가 학교 동아리를 가 봐도 그렇잖아.
나 : 맞는 거 같아요. 솔직히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려면 못해도 한 모임에 10번은 참석해야 될 거 같지 않던가요?
김 : 인정. 예를 들어 내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소모임’을 통해 동호회를 가입했다고 쳐보자. 예를 든 거니까 너무 그렇게 대놓고 웃진 말구... 이를테면 내가 한 번도 해본적도, 관심 가진 적도 없었던 살사댄스나 뜨개질을 하러 갔다고 치자고. 처음 나가서 친해지는 건 우리가 봤듯이 무리니까 그래도 한 10번은 나가야 될 거 아냐. 내가 애당초에 관심과 흥미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살사댄스를 순수 ‘친교’만을 목적으로 10번을 참여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난 못할 것 같아.
나 : 저도 인정. ‘소모임’한다고 친구가 막 생겨나고, 애인이 생기고(웃음) 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거 같고. 그런 목적만으로 모임에 계속 나가는 건 스스로도 힘들 거에요. 이 앱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계기만 만들어 주는 거지.
김 : 혹시 이런 동호회로 애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있는지?
나 : 아니요(단호).
김 : (당황) 어...실은 나는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 있긴 한데. 근데 혹시라도 주변에 연애나 친교를 목적으로 ‘소모임’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할 거야. 가만 둬도 결국 본인 스스로 흥미 잃고 앱 지울 것 같긴 하지만.
나 : 선배 앱 제대로 안봤죠? 생각보다 ‘친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모임도 많아요.
◇술을 위한 모임, 모임을 위한 모임부터...원데이클래스, 정식 레슨까지
김 : 예를 들면?
나 : 이거 한번 보실래요?
김 : 이게 뭐야(크게 웃음). 여기는 동호회 콘텐츠가 ‘사교’야?
나 : 아예 '사교/인맥' 카테고리가 있어요. 여기 콘텐츠는 술이네. 여기는 클럽 즐기기. 여기는 동갑 친목. 뭐야. 여기는 아예 매력이 콘텐츠네. 훈남 훈녀 모집… 선배! 맘먹고 찾으면 여기서 친교와 사랑 모두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김 : 오...? 에이...근데 좀 웃기잖아. 모임을 위한 모임이라니...(웃음) 아무리 내가 동호회에서의 만남같은 걸 긍정적으로 본다 해도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나 : 아까는 동호회에서 애인 만드는 것도 괜찮다더니?
김 : 아니 아니. 그렇게 인위적인 만남을 상상한게 아니라 접근 자체는 순수한 상황에서 싹트는 교우관계를 생각한거지. 아주 순수하게 콘텐츠 그 자체를 위한 모임은 없을까?
나 : 선배 그럼 차라리 강습을 들어요.
김 : 강습?
나 : ‘소모임’에 그냥 레슨이나 강습도 많아요. 통기타 레슨이라던지, 피아노라던지 외국어도 배워볼 수 있구. 아무래도 강습료 내면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선배가 말하는 그 ‘의도의 순수함’이 보다 증명된 사람 아니겠어요?
김 : 이 플랫폼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고? 나중엔 학생들의 그룹과외를 구한다거나 좀 더하면 집회·시위도 모집할 수 있겠는데?
나 : 플랫폼의 이용자가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이는 대목인거죠. 초창기에 검색이나 겨우 되던 포털사이트들이 그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던가요? 아무튼 ‘소모임’으로 애인 만드실거에요?
김 : 아니? 내가 애인이 없다고 말한 적은 없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