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생각한 너의 인생 마무리는 어떤 거였어?"
최근 재연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웹툰 속 신은 죽은 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그들로 하여금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평소 같았으면 매일 접하는 수많은 활자 중 하나로 치부했을 이 질문이, 임종체험을 위해 영정사진을 찍는 순간 인생의 끝을 알리는 저승사자의 심판처럼 느껴졌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는 인생의 마무리를 미리 경험해보려는 사람들 30여 명이 모였다. 어르신들이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20~30대 방문객들이 대부분. 이날 체험장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분주히 돌아다니던 대학생 고모(21) 씨는 "요새 우리 또래의 버킷리스트 중 가장 핫한 게 죽음체험"이라고 말했다.
다정한 모습의 20대 커플 체험자에게 말을 걸었다.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임종체험을 알게 됐다는 김모(28) 씨는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나의 내일이 오늘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체험을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여자친구 권모(28) 씨는 "남자친구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오늘 체험해보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추천해 줄 생각"이라고 웃었다.
회사 사람들끼리 체험장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해의 한 중독 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모(38) 씨는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죽음과 가까이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직업인 만큼,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팀원들과 함께 찾아왔다"면서 "(우리도) 환자들에게 좋은 죽음의 가치를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려 한다"라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체험장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죽음체험 신청서' 작성이다. 신청서의 칸 중 '죽음체험을 통해 기대하는 점'을 적어 나갈 때 사람들은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 '매일 매일에 감사하기 위해서', '가족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와 같은 다양한 글로 칸이 채워졌고, 작성을 완료한 사람들은 영정사진을 찍어 주는 간이 사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정사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다들 어색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사진사 아저씨가 밝은 미소를 지으라고 조언해주자, 이들은 다소 가벼워진 얼굴로 렌즈를 응시했다. 30년 전 입사 증명사진을 찍은 뒤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본다는 구모(63) 씨는 "이렇게 영정사진을 찍으니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영정사진을 촬영한 뒤에는 정용문 효원힐링센터 센터장이 진행하는 '힐다잉' 교육이 이어졌다. 정 센터장은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죽음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이제는 사회가 변했다"면서 "여유를 가지고 좋은 죽음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때가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죽음 중에서도 자살은 가장 안 좋은 죽음"이라며 "전혀 비참하지 않은데 스스로가 자기를 비관하고 자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죽음체험을 통해 스스로가 그렇게 불행하지 않고, 남들도 그 정도 고민은 갖고 산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죽음체험이 끝난 뒤에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입관체험은 강의실 위층에서 이뤄졌다. 그곳에는 수많은 관이 줄지어 있었고, 관 위에는 수의가 놓여있었다. 수의를 입고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 엄숙한 분위기가 공간에 가득 찼다. 각자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스스로가 추구한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언장 작성을 마친 뒤에는 열 명 정도가 본인의 유언을 낭독했다.
"사랑하는 여보.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되겠지.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남겨줄 것이 빚밖에 없어서 더 미안해."
"이제 나는 생을 마감한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보 그동안 고마웠다. 더 잘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당신을 더 사랑하며 살았을 텐데...."
"아빠, 오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나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마. 내가 남기는 사망보험금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내가 조금 먼저 엄마에게 갈게요."
"엄마, 아빠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아직 부모님께 해드릴 것이 많은데…. 내 죽음으로 가족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부분 유언을 낭독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유언을 낭독하다가 터지는 울음에 마이크를 내려놓는 사람도 있었고, 한 두명은 아예 엎드려서 오열하기도 했다.
유언 낭독을 마친 뒤 사람들은 수의를 입고, 입관 체험을 시작했다. 관에 들어가 눕자, 모든 불이 꺼지며 공간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덮였다. 처음에는 좁은 공간이 주는 답답함에 여기저기서 뒤척이는 소리도 들렸지만, 이내 모두 평온함을 찾은 듯 고요함이 이어졌다.
짧지만, 그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 10여 분이 흐른 뒤 관 뚜껑이 열렸다. 3시간에 걸친 임종체험은 끝났고 수의를 벗고 체험장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임종체험장을 방문한 고모(56) 씨는 "빨리 집에 가서 가족들 얼굴을 보고 싶다"며 "오늘 체험을 계기로 가족들에게 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는 신모(33) 씨는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라고 소회했다.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 가지 말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되라."
로마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죽음에 관한 고찰을 이렇게 기록했다.
수천 년을 살 것처럼 가치 있는 삶의 영위를 무기한 유기해왔던 누군가에게, 와야 할 죽음을 애써 외면한 채 무기력한 오늘을 억지로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후회 가득한 2018년을 보내고 새로운 2019년을 맞이하려는 누군가에게, 임종체험은 '오늘'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