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만 국민투표의 교훈

입력 2018-11-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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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국제경제부 기자

24일(현지시간) 대만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의 쓴맛이 심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불렸던 대만의 국민이 △탈원전 반대 △동성혼 합법화 반대 △성별 평등교육 반대를 택했기 때문은 아니다.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반대’ 그 자체보다는 총투표라는 제도의 무심함이다.

투표 결과를 조금만 뜯어보아도 드러난다. 이번 국민투표에 올라온 10개의 안건 중 에너지 정책 관련(제7·8·16안) 안건의 무효 투표 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무효 투표 수가 가장 적은 제10안(무효 45만9508표)과 가장 많은 제16안(92만2960표)을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제10안은 결혼을 남녀의 조합으로 제한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제16안은 2025년까지 핵 발전소 운전정지를 명문화한 전기사업법 조항을 폐지할지를 물었다. 직관적인 질문에는 쉽게 표를 던졌지만 가치판단이 어려운 질문에는 손을 머뭇거린 것이다.

특정 안건들이 서로를 미묘하게 보충하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은 민법상 남녀 외에 다른 성별 간 혼인을 인정하는 것은 반대(제10·14안)하면서도 제13안에서 다른 형태로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에는 동의했다.

이쯤 되면 대만 국민투표는 무심하거나 순진함을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정치 지도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무책임하게 국민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 최소한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직접·즉각·선호적 다수결에 맡겨서는 안 된다.

대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국민투표·직접참여 정치가 유행하고 있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청와대 청원’에는 온갖 분노와 억울함이 뒤엉켜 쏟아진다. 그중 무엇도 손대지 않았지만 정부는 일단 “들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얻었다.

그러나 국민이 언제나 이런 책임 회피를 감내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이용하지 말라.” 혈기 넘치게 출발한 대만 민진당의 참패가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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