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을 지낸 왕루이린이 지난 8일 베이징의 인민해방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장례식은 당 지도부 묘역인 바바오샨혁명공원에서 치러진다.
SCMP는 왕루이린 지인의 말을 통해 그가 덩샤오핑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趙紫陽)도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밀려나기 전 덩샤오핑을 만나려 했지만 왕루이린이 면담을 시켜주지 않았다고 책에서 회고한 바 있다.
1930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왕루이린은 16세이던 1946년 인민해방군(팔로군)에 투신했다. 20세에 당시 부총리로 임명된 덩샤오핑의 비서를 맡았다. 왕루이린은 1992년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이 된 뒤에도 여전히 덩샤오핑의 비서 업무를 담당했다.
덩샤오핑의 딸인 덩룽(鄧榕)은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 비서국이 2009년 펴낸 책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비서로 일한 왕루이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왕루이린은 1967년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한 후 노동 교화 시설로 보내졌다. 1973년 덩샤오핑이 부총리로 다시 임명되자 왕루이린도 다시 비서로 복귀했다.
1981년 덩샤오핑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랐고 2년 뒤 왕루이린을 군사위 판공청 주임으로 임명했다. SCMP는 이 자리가 전통적으로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앉히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