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중국의 누리꾼들은 ‘올해의 한자’를 궁리한 끝에 가난하다는 뜻인 窮(궁할 궁)의 일부와 못생겼다는 뜻인 醜(추할 추)의 일부를 따서 ‘추’라는 발음의 글자(사진)를 만들었다. 젊은이들의 깊은 비관과 자학을 읽을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발표한 ‘올해의 단어’는 ‘toxic’이다. ‘독성이 있는’, ‘유독한’ 이런 뜻이다. 러시아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 독살기도 사건, ‘유독 폐기물(toxic waste)’, ‘유독 환경(toxic environments)’ 등 이 단어가 올해 다양하게 사용됐다는 것이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젊은이들의 마음이 유독한 것에 감염되고 전염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수신문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뭘까.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던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24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수신문은 매년 신춘에도 사자성어를 내세우다가 2016년부터는 우리말로 ‘희망의 노래’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구절 ‘곶 됴코 여름 하나니’(2016),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2017)를 골라서 발표한 바 있다. 2018년에는 희망의 노래를 선정하지 못했다. 2019년에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한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작년까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로 충분했지만, 이젠 평가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파사(破邪)는 알맞고 옳았는지, 현정(顯正)은 바르고 제대로인지 따져봐야 한다. 내년도 ‘희망의 노래’는 더 어렵다. 과연 내를 이루어 바다로 갔는지, 갔다면 그뒤 어떻게 됐는지 생각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불공평, 불공정, 부정의라는 비판과 항거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은 어느새 질문, 그러니까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게 됐다. “(국내문제는) 짧게라도 질문을 받지 않고 답하지도 않겠다”(12.1 기내 간담회)는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
원래 가까운 일이 더 어렵다. ‘근사록(近思錄)’에 “집안일은 어렵지만 천하는 쉽다. 집안은 가깝지만 천하는 멀기 때문이다”[家難而天下易 家親而天下疏也]라고 나와 있는 대로다. 천하 경영보다 집안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 대통령만 되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범함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꼈다”며 평범한 삶이 더 좋아지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맞는 말이다. 살아갈수록 평범하고 보편타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된다.
모든 일이 순조로워 심신이 편하고 병과 걱정이 없는 평순(平順), 평탄(平坦), 평강(平康), 평화(平和)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년도 우리 경제를 가리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고 단언한 사람도 있지만, 그게 어찌 경제 문제뿐일까. 한 해를 마감하는 칼럼에 그래서 평강을 강조하게 된다. 평강을 간절히 소망하고 기원한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