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2019년 vs 1970년' 시대별 연애史 토론…'통금 속 19금 스토리'부터 연말 데이트코스까지

입력 2018-12-28 13:20수정 2019-01-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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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불렀던 주필과 방탄소년단의 'IDOL'이 애창곡인 막내 기자가 만나 전혀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한 시대별 연애사를 얘기해봤다. (출처=유뷰브 캡처)

70학번 ‘어르신’과 2019학번 ‘새내기’가 만나면 어떤 얘기를 나눌까.

학번 차이는 무려 50학번. 반백 년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10명의 대통령이 탄생했고, 전 세계에서는 12번의 올림픽과 13번의 월드컵이 열렸다. 이 기나긴 역사의 간극을 메워줄 유일한 공감 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연애'일 것이다.

MT는 '대성리'로, 연애는 '연합 동아리'에서, 기념일엔 '양식'을, 킹카는 '웃긴 사람', 퀸카는 '예쁜 사람'. 이 원칙들은 남녀불문 세대 불문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러다가도 통금을 피해가며 연애했던 이야기, 삐삐도 없어 하숙집 전화로 통화하던 이야기가 나오면, 어르신과 새내기의 심리적 거리는 50년 그 이상으로 멀어진다.

88올림픽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08학번 막내 기자와, 6·25전쟁 중 태어난 주필이 극적으로 다르면서도, 확실한 교집합이 있는 20세기와 21세기의 연애사(史)를 얘기해봤다.

◇만고불변의 법칙…MT는 '대성리', 연애는 '연합동아리'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애인이 '클럽'에 가는 것을 두고 헌팅하러 가는 것 아니냐며 매일 싸우지만, 70년대 디스코장은 오로지 놀고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경연 기자(이하 나): 주필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것 중 하나가 '클럽'에 왜 가느냐 이거에요. 클럽에 가려는 사람은 춤추고 음악 들으러 가는데 뭐가 문제냐고 따져요. 반대하는 쪽은 이성 만나러 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죠. 주필님 시대에는 어땠어요?

임철순 주필(이하 임): 나는 70학번 세대인데, 우리 때는 일단 클럽, 나이트클럽, 롤러장 다 없었어. 이건 80년대 이후에 생긴 거지. 나 때는 그나마 '디스코장(?)' 정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어. 너무 옛날이라 명칭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그런데 그곳에 이성 만나러 가는 사람은 없었어.

나: 남녀가 모이는 곳인데 이성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면 왜 가는 거예요?

임: 말 그대로 디스코 추러 가는 거지. 술 먹고 춤추면서 놀려고. 그냥 친구들끼리 즐기러 온다는 느낌인 거지. 나 같은 경우에는 디스코장을 지금 집사람과 갔었지. 집사람과 신나게 놀러 간 거야.

나: 주필님은 이성을 만나려고 클럽에 간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시겠네요?

임: 그렇지. 우리 시대 디스코장은 요즘 시대 클럽의 개념과는 아예 달라.

나: 그러면 애인을 주로 어디서 만나셨어요?

임: 내 친구들은 대학생이 된 후에 연합동아리를 통해서 이성을 많이 만났지. 그때는 동아리라는 이름도 없었고, 연합써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 나는 봉사 연합써클이었어. 말이 봉사였고 사실 노는 거였지 뭐. 그 써클에서 커플이 많이 탄생했어. 결혼한 커플도 있고.

나: 요즘이랑 똑같네요.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연합동아리 가입이거든요. 특히 여대생들은 학교에 남자가 없으니까 연합동아리부터 가입해요. 대부분 가장 많이 하는 것들이 ‘봉사, 독서, 토론’ 연합동아리에요.

임: 그렇게 연합동아리에 가입하면 제일 먼저 엠티를 가는데, 대성리로 주로 갔어. 기차 타는 맛, 멀리 떠나는 맛, 그날 돌아오기에 거리가 먼 맛. 3가지 정도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곳이지.

나: 엇, 엠티 장소까지 지금이랑 똑같네요. 요새는 경춘선이 뚫려서 학생들이 대성리로 엠티를 더 자주 가더라고요.

◇'통금'이 만들어 준 '19금' 연애스토리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 (출처=국가기록원행정자치부 대한뉴스 자료 유튜브 캡처)

나: 대성리로 엠티가고, 연합동아리에서 애인을 만들고. 요즘 학생들이랑 똑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학생들은 전혀 모르는 그때 그 시절의 연애 스토리가 있을까요?

임: 그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니까. 밤 12시 넘어서 길을 돌아다니면 안 됐지. 만약 그 시간 넘어서까지 돌아다니다가 경찰한테 걸리면 유치장 가는 거야.

나: 흠. 일반적인 커플이라면 늦게까지 데이트 하고 싶은 게 정상이잖아요. 그리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으니까, 일부러 통금을 어겼을 것 같기도 하고. 꼭 통금 시간 지켜서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임: 남자들은 일부러 밤 12시 가까이 될 때까지 여자친구를 붙잡아뒀어. 자정이 되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통금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여관에 들어갔지. 통금 시간이 되면 "이걸 어쩌나…" 하면서 손잡고 들어가는 거지 뭐.

나: 여관은 모텔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죠? 어떻게 보면 통금이 만들어준 러브스토리네요. 그렇게 둘이 밤새 같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은 관계가 될 것이고… 더 깊은 사이가 돼 있겠네요.

임: 그렇다고 모든 커플이 다 그랬다는 건 아니고, 웬만하면 통금시간 전에는 들어가려고 했고. 특히 딸을 둔 부모님들은 불안하니까 통금을 밤 10시로 정해서 더 빨리 들어오게 만들었지.

◇12월 31일, 그때 그 시절 ‘연말 데이트코스’는?

▲매년 1월 1일 새벽 시민들은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 모여 타종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뉴시스)

나: 벌써 2018년이 다 끝나가요. 요즘 커플들은 주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함께 종로 보신각에 가서 카운트다운을 하거나 정동진에 일출을 보러 가요. 인증샷은 필수에요. 주필님 세대는 어떠셨어요?

임: 뭘하긴. 그냥 하숙집에서 술 마시는 거지. 요새야 추억, 워라밸, 욜로 이런 것들을 많이 찾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거든. '추억을 만든다'라는 말 자체가 없었어. 그러니까 인증샷처럼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고.

나: 요새는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지금을 즐기자’ 이건데, 그럼 당시에는 왜 그런 개념이 없었을까요?

임: 당시에는 노는 방법을 몰랐고, 놀 거리도 별로 없었어. 뭘 하고 놀아야 할지를 모르니 술만 먹었던 거지. 당연히 데이트할 곳도 없었지. 그리고 그때는 지금 힘든 것들을 참고 견디면 나중에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만족지연훈련’이 잘 돼 있었어. 요즘 사람들처럼 당장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관이었지.

나: 그럼 주필님은 어떤 가치관이 더 옳다고 보세요?

임: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 라고 딱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시대가 바뀌면서 노동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나: 그래도 기념일 정도는 애인이랑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특별히 보내셨죠?

임: 기념일이라고 해봐야... 요새처럼 백일, 이백일 이런 건 세지도 않았고, 일년에 한 번? 정도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지. 함박스테이크 같은 것 말이야. 아마 생일이나 돼야지 갔던 것 같아.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기념일에도 못끼지.

나: 그래도 연말이 되면 종로 보신각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봐도 몇십 년 전이지만, 종 앞에 다 같이 모여서 카운트다운 외치는 모습은 똑같던데요?

임: 그때도 그랬지. 사람들이 엄청 많고, 발 디딜 틈이 없고. 엄청 복잡했지.

나: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많이 있네요. 특히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렘은 백 년이 지나도 똑같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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