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운 뉴스랩부장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인 1865년, 증기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마차(馬車)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내용이다. 현재는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법이기도 하다.
사실 붉은 깃발법은 1861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기관차도로법)’ 중 두 번째 개정안의 별칭이다. 붉은 깃발법은 첫 법안보다 속도제한을 훨씬 더 강화했고(시외: 10마일→4마일ㆍ시내: 5마일→2마일), 마차가 선도하는 것을 의무화해 현실적으로 자동차가 마차를 앞지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1878년에 나온 세 번째 개정안에서는 마차를 타고 선도하는 기수를 법에서 삭제했다. 일견 법이 완화된 것 같아도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이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 하며, 말을 놀라게 하는 증기를 내뿜지 말 것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증기자동차에 증기를 내뿜지 말라니,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웃긴 법은 30여 년이 지난 1896년까지 수명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에 내줬다. 그 여파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미니, 재규어, 로터스 등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다른 나라 업체에 인수·합병(M&A)된 신세.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변변한 입지가 없는 것도 물론이다. 이 차는 어떻고, 저 차는 어떻고 비평하기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톱기어’ 빼고 말이다.
이들 법안의 배경은 기존 기득권자였던 마차 사업자들의 로비가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정치인들은 ‘경제적 약자인 마부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라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내세울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필요성’에 의해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합의’라는 조건이 결합할 때 일어난다. 변화의 시점에서 종전의 규칙과 충돌하는 부작용도 발생하지만, 세 가지 조건이 부합하는 경우 그 변화를 막을 수 없다. 이를 거부한다면 붉은 깃발법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 남은 것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8세기 말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화를 끌어내면서 열강의 탄생과 부의 집중, 그리고 일자리의 감소라는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수공업의 몰락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러다이트(Luddite)운동으로 이어졌지만,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현재 역시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변화 역시 같은 부작용이 기다리고 있다. 일자리는 더욱 감소할 것이며 부는 더욱 집중될 것이다.
이미 미국의 도미노피자는 자율주행을 바탕으로 한 무인 피자 배달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유통공룡 아마존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트업까지 무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훠궈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가 10월 문을 연 스마트레스토랑은 사람이 하는 일의 상당수를 로봇이 대체했다. 고객은 태블릿으로 주문하고, 로봇이 주방에서 재료를 꺼내 세팅하고, 음식을 나르고, 빈 식기를 수거한다. 물론 과정마다 사람이 개입하지만, 고용인력을 20~30% 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로봇팔이 커피를 타는 로봇카페가, 사람 한 명 없는 무인편의점이 등장했다. 사람을 안 써도 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19년 앞에 서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게 불과 10여 년 전. 변화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은 자명하다. 변화를 막는 어리석음이 아닌, 변화에 대비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1865년 영국이 자동차를 마차보다 느리게 달리도록 제한하는 법을 만들기 전에, 도로를 자동차에 맞게 개선하고 마부들을 자동차 공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재교육했다면 어땠을까. 역사는 바뀌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