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영화 광고.
‘현대 여성의 性생활 이대로 좋은가?’
‘매일 밤 그녀에겐 황홀한 고민이 찾아온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속궁합의 격차가 너무 커!’
성인 비디오 광고가 아니고 당시 극장 상영작의 광고다.
◇1980년대에 포르노를 보려면…
기자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이런 얘길 해주신 적이 있다.
“너네는 지금 많은 미디어를 통해 ‘그런 걸’ 접할 수 있지만, 우리 땐 ‘그런 것’도 없었어. 그래서 어찌나 힘들었는지(?)”
유치원생도 유튜브를 시청하는 2019년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너무나도 손쉽게 영상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요즘의 청장년들이 포르노를 시청하고자 마음먹고 실제로 시청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체로 30초 이내일 것이다. (물론 미성년자는 포르노를 시청해선 안 되지만, 안타깝게도 청소년이 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호기심을 원천 차단하는 데 성공한 문화권은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관련 자료는 없지만, 추측건대 1980년대에 ‘포르노를 시청해야지’라는 결심부터 실제 포르노 시청까지 드는 시간은 약 3시간 안팎이 걸리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일단 KBS, MBC, SBS만 나오는 TV에서 포르노를 틀어줬을 리는 만무하고, 케이블TV는 지금처럼 보편적이던 시절이 아니다. 아주 당연하게도 IPTV, 유튜브, 웹하드, 토렌트 등은 없었다. 물론 영상 재생 기능도 없었지만,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부터 보편적이지 않았을 때다.
이 당시 야한 영상을 보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방법. 바로 극장에서 틀어주는 성인영화를 보는 것이다.
◇대체 왜 극장엔 포르노들이?
당시 일간지들의 영화 광고의 상당수는 이런 식의 성인영화 광고였다. 제목도, 문구도 자극적이면 자극적일 수록 좋았다. 아주 자극적인 멘트 몇 개만 추려보자.
“거칠게 다뤄줘! 더!더!더! 엄청난 사랑 앞에 숨이 막혀온다!”
“청년(靑年)의 파워인가? 중년(中年)의 테크닉인가?”
“사는 ○이 있으니 파는 ○이 생기지!”
“이 여자(女子)는 남자(男子) 킬러인가?”
이 당시 영화 산업이 모두 포르노 산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결론 내려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낯뜨거운 문구들이 가득한 성인영화 광고들 사이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는 수작 액션영화인 ‘다이 하드’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포르노’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 가지 더. 할리우드에서 ‘다이 하드’를 만드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영화만을 상영하고 있던 게 국가 정책적인 문제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5공화국의 유명한 우민화 정책, '스크린', '스포츠', '섹스'라는 3S에서 ‘극장 성인물’은 2개나 해당하지 않는가.
5공의 3S정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겠지만, 사실 극장의 성인영화 상영을 3S탓으로만 돌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건 아래의 상영관 광고가 증명해준다.
◇단관 극장의 시대, “돈이 돼야 영화를 걸지”
중앙, 다모아, 허리우드, 신촌, 채원, 동아, 스카라, 동일, 경원, 천호, 여의도, 연흥, 장충…. 빼곡하게 써있는 극장의 이름들. 이 당시 극장이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단관 극장이었다.
단관 극장. 상영관이 하나인 극장. 한 극장에서 특정 기간에 상영할 수 있는 영화는 단 한 작품. 그것도 하루 5회에서 많아야 6회 상영이 전부다.
1980년대 단관극장을 운영하는 극장 주인이라고 상상해보자. A라는 영화는 무엇을 걸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는 화끈한 성인영화다. B라는 영화는 무슨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액션, 공포, 멜로 등 특정 장르의 영화다. B라는 영화를 보니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파악이 잘 안 된다.
1관에는 A 영화, 2관에는 B 영화를 걸어서 간을 좀 보다가(?) 더 흥행하는 영화를 양쪽에 걸면 좋을테지만, 상영관이 한 개 뿐이라 불가능하다. 앞 시간에 A 영화 3번, 뒤 시간에 B 영화 3번을 틀어 간을 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한 영화를 상영할 때보다 비용이 두 배로 든다. 두 곳의 영화배급사와 두 건의 유통 계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뒤 시간으로 나눠 상영한다고 해서 매표 수익을 두 배로 늘릴 방법도 없다. 이 역시 영화를 두 개 사서 상영하더라도 하나 뿐인 상영관에서 팔 수 있는 표가 늘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업 마인드를 가진 극장주들이라면, 선택은 당연히 A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 극장주들이라고 해서 딱히 ‘영화 산업에서 다양성의 발전과 진흥을 저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리는 없다. 오히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작품성도 있고, 재미도 있는 흥행 대작 하나 있다면 우리 극장에 한 번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모를까. 다른 걸 차치하고서라도 ‘흥행 대작’을 걸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런 염원을 한 방에 뻥 뚫어주는 작품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은 흥행 대작. 바로 1993년에 나온다.
◇서편제. 한국 영화 산업의 분수령
한국 영화 산업은 1993년 개봉한 ‘서편제’의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서울 관객 100만 돌파 작품(집계 능력의 한계로 서울 관객만 지표로 함). 전국 누적 관객 290만 추정. 이는 2년 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2’와 같은 해 개봉한 ‘쥬라기공원’을 넘어서는 흥행 성적이다. 할리우드에 맞붙어 볼 만한 우리의 영화!
‘서편제’의 흥행으로, 마침내 한국의 영화 산업은 ‘화끈한 정사신을 큰 화면에서 생생히 볼 수 있는 성인용 오락 매체’에서 ‘작품성을 토대로 예술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종합예술의 한 분야’로 격상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영화계를 고무시켰고, 그들의 열정은 1998년 ‘쉬리’에서 결실을 맺는다. 전국 누적 관객 최대 620만 명 추정(580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함). 멀티플렉스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도 전인 1990년대 말의 흥행 성적이다. ‘서편제’가 ‘한국도 작품성 있는 흥행작을 만들 수 있다’를 보여줬다면, ‘쉬리’는 ‘한국도 할리우드 못지않은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를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멀티플렉스가 본격화된 이후인 2003년엔 ‘실미도’가 한국 최초의 천만 관객 돌파라는 영예를 안았다. 다음 해 천만 돌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그다음 해엔 ‘왕의 남자’…. 그리고 2014년엔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1700만 관객의 ‘명량’. 지난해엔 사상 최초의 시리즈 2편 모두 천만을 돌파한, 이른바 ‘쌍천만 시리즈’ ‘신과 함께’ 1‧2편이 등장했다.
여담이지만, 한국 영화 흥행 성적에 기념비적 의의를 가지는 이들 작품 중 단 한 작품도 빠짐없이 한국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던 작품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고유의 역사, 문화, 정서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소재로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분단을 소재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 만들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어설픈 시도는 대체로 ‘007 어나더데이’ 같은 안 좋은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포르노에서 ‘쌍천만 시리즈’ 영화를 탄생시키기까지
어떤 산업이 태동기에 섹슈얼한 콘텐츠와 연결되는 것은 더러운 일도 아니고, 특별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게 사진이나 영상 등 시청각적 만족을 주는 콘텐츠라면, 오히려 섹슈얼한 콘텐츠와 거리를 두며 태동한 산업을 찾는 것이 더 힘들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인터넷 방송, 콘솔게임, PC게임, VR 등의 비교적 최신의 미디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영상과 사진이라는 기술 자체도 피해 가지 못했던 필연적 과정이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서편제’라는 걸출한 대작을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낯뜨거운 성인용 유희’에서 ‘정상적인 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인터넷 방송이 ‘대도서관’이라는 슈퍼스타를 낳고부터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상물’에서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들이 가득한 자유로운 방송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서편제’와 ‘대도서관’ 전후에도 물론 훌륭한 작품과 인터넷 방송인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이만큼이나 강렬하게 ‘이거 진짜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음침하고 유해해 보이는 유희를 당당한 산업으로 만들어줄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 오늘도 새 시대 뉴미디어의 종사자들은 그 걸출한 명작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고? 기자도 모른다. 아마 임권택 감독도, 대도서관도 뚜렷한 해답은 모를 것이다. 평소에 해당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망을 확충하고, 산업 내 부조리한 착취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감시를 철저히 하다 보면… 만들어질 수도 있는데, 안 만들어 질 수도 있다. BTS가 어디 한국 가요계가 의도적으로 만든 성공 작품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