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
이렇게 식물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방법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다음 해에 싹틀 부분만 철저하게 보호하여 겨울을 넘기거나, 녹색 잎을 달고 있되 내부에 부동액을 채워서 얼지 않도록 보호하여 겨울에도 활동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어떤 풀들은 땅 위에 나와 있는 줄기와 잎은 죽게 두고 땅속에 있는 뿌리와 다음 해에 싹틀 부분만을 지온으로 보호하기도 합니다. 죽은 잎들은 그대로 붙어서 차가운 바람을 막아 싹틀 부분을 보호해주기도 합니다.
겨울에 식물이 잎을 떨어뜨리고 시드는 것은 식물이 살아가는 데 근본이 되는 광합성을 추운 겨울에는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광합성을 하려면 햇빛이 강하고 온도도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이 된 것입니다. 또, 겨울에도 지속적으로 뿌리에서 물을 흡수하면 식물체에 수분이 많아지고 얼어서 식물 조직이 터져버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식물은 스스로 물을 최대한 밖으로 빼내어 시들게 되는 것입니다. 잎을 떨어뜨릴 때에는 잎에 있던 양분을 최대한 가지나 줄기로 옮겨서 저장한 후에 잎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야 다음 해 봄에 싹을 틔울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물들은 녹색 잎을 단 채로 겨울을 견딥니다. 이 식물들은 몸체를 부동액으로 채워서 얼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인데,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식물체는 물로 가득한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물이 얼면 세포가 터져 죽게 됩니다. 식물은 세포가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포 내의 물의 비율을 줄이고 당분의 농도를 높여갑니다. 당분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물은 더 얼지 않게 되니 이때 수액을 부동액으로 불러도 문제가 없습니다.
겨울철 잎이 떨어진 나무를 살펴보면 가지 끝이나 옆쪽에 조그만 혹 모양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겨울눈’이라고 불리는 보호 조직으로 겨울을 견딘 후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울 꽃과 잎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나무의 겨울눈들을 살펴보면 눈 껍질이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는 것, 가죽처럼 질긴 껍질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 당분이 많은 액체로 겉을 감싼 것 등 다양합니다. 이것은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으로부터 내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겨울눈들의 모양이 다양하게 발달한 것입니다. 내년에 싹을 틔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부분만은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
마른 잎 밑동에 죽은 듯 산 듯 남아 있는 식물이나 눈을 헤치고 보면 땅에 납작 붙어 녹색 잎을 달고 있는 식물들도 겨울을 나기 위한 전략입니다. 줄기는 최소화한 채 땅에 꼭 붙어서 바람이나 추위를 피하고 세포가 얼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겨울을 견딥니다. 이러한 전략을 가진 식물은 잎과 뿌리 부분에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씨앗으로 생장을 시작하는 식물에 비해 다음 해 봄에 일찍 빠르게 자랄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안으로는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식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지만, 모든 식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남기고 보호하기 위해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살면서 겨울과 같은 시기를 맞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무엇을 버려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