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상화폐 광풍. ‘김치 프리미엄’이 꺼지며 지금은 투자 열기가 시들해졌지만 취업난과 생활고의 쓴맛, 가상화폐의 단맛을 본 젊은층 사이에서는 가상화폐가 여전히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조명했다.
NYT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3대 가상화폐 시장. 1월에만 총 68억 달러어치가 거래됐다. 한국은 또 가상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상화폐의 주요 허브다.
NYT는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한국에서는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커피숍들은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케이블 방송에서는 ‘김치 파워드’라는 이름의 ‘블록 배틀’ 게임 쇼가 펼쳐지고, 서울의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가상화폐 소개 행사에 60~70대 남녀가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
NYT는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를 일컫는 ‘흑수저’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 등으로 사회적 계급을 분류하는데, 스스로를 흑수저(dirt spoons)라 부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상화폐가 탈출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자책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김한결 씨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평범한 젊은이들을 위한 기회가 없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한때 그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수천 달러짜리 옷도 사고 커피숍을 열겠다는 꿈도 꿨지만 거품이 거지면서 거의 모든 돈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렸을 때 수치심을 느꼈다”면서도 앞으로도 가상화폐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손실을 만회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NYT는 한국에서 젊다는 것은 패배하는 것이고 답답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나 들어가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이것도 소수의 유명 대학을 나와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수년간 대입을 위해 재수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아시아에서 최악으로 꼽힌다. 전체 실업률이 3.4%인데 청년 실업률은 10.5%에 이른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sampo generation)’인 이유다.
NYT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던 젊은이들이 한국을 가상화폐의 허브로 만들었다며 시장이 사실상 붕괴된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가상화폐를 탈출구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가상화폐 회의주의자들이 “가상화폐의 봄날은 갔다”고 입을 모으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다르다는 것이다.
김기원 씨는 NYT에 “가상화폐 시장이 돌아설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나는 잃을 것이 없다. 나는 항상 부자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