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없이 국경장벽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다. 발표 하루 만에 각종 소송전이 시작되는 한편 경제 정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주요 외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등은 미국에 대한 침략”이라며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예산을 재배정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국경장벽 예산 13억7500만 달러(약 1조5530억 원)에 국방부와 재무부 등에 다른 목적으로 승인된 예산 66억 달러를 끌어와 총 80억 달러를 장벽 건설에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미국 시민단체들의 즉각 소송에 나섰다. 하루 만에 뉴욕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여러 단체들이 더 많은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비영리 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컬럼비아특별구(DC) 연방지방법원에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가 다른 목적으로 배정된 자금을 국경장벽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비영리기구인 ‘워싱턴 소재 책임성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은 법무부까지 고소했다.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 결정과 관련된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더 심각한 건 의회에서 여야 대립이 심해지면서 예산 심의 지연으로 세출이 급감하는 ‘재정절벽’ 우려가 강해지고, 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비준도 불확실해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기자회견에서 “USMCA를 비준하면 (경제를 자극해) 간접적으로 장벽 건설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며 작년 11월 3개국이 서명한 새 NAFTA 비준을 의회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비준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재정지출도 문제다. 15일에는 2019 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예산이 겨우 통과됐지만 2020년도 예산 심의는 안중에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작년 2월에 2018 회계연도 재정지출을 3000억 달러 늘리는 특례법을 통과시켰다. 2020년도 분도 마찬가지로 재정지출 확대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재정지출이 급감해 재정절벽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연방정부에는 재정 악화를 막는 ‘예산관리법’이 있으며, 이에 근거해 각 회계연도 재정지출에 상한을 둔다. 2019년도는 국방비와 공공사업비 등 ‘재량적 경비’ 상한이 1조910억 달러였는데, 특례법을 통해 약 1조2400억 달러로 늘렸다. 2020년도 상한은 1조1180억 달러로, 새로운 재정지출 확대법이 없으면 1000억 달러 이상이나 세출이 급감한다. 이렇게 되면 올 하반기에는 감세 효과도 미미해져 미국 경기는 2중의 역풍을 맞고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