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다리면서 마시는 미세먼지가 하루 중 제일 많죠.”
6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로 도로가 북적였다. 시민들은 강남대로를 지나가다 특이한 구조의 ‘서초현대렉시온오피스텔’ 버스 정류장을 발견하고는 신기하듯 쳐다봤다.
‘서초현대렉시온오피스텔’ 정류장 천장에는 다른 정류장과 달리 냉‧온풍기가 달려 있다. 정류장 세 면은 강화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유리가 없는 대신 에어커튼이 설치됐다. 에어커튼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압축 공기를 분출해 공기막을 만드는 원리다. 에어커튼 덕에 따로 문을 여닫을 필요가 없다보니, 승객들이 승하차 시 이동이 수월하다.
공기청정 시설을 갖춘 ‘서초현대렉시온오피스텔’ 정류장은 서초구가 지난달 시범 운영을 시작한 ‘스마트 에코쉘터(smart eco shelter)'다. 도로 한복판에 있는 정류장에 미세먼지 차단시설을 설치해,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미세먼지를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정류장 안에는 공기정화 식물이 가득 심겨 있어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남역 근처 회사에서 근무하는 IT 개발업자 장모(35) 씨는 “미세먼지 차단 시설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미세먼지에 관심을 두겠다는 의지라고 생각된다”면서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가장 많은 미세먼지를 마시는데, 버스 정류장에 이런 시설이 설치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초문화예술회관정류장’에도 서초구가 설치한 스마트 에코쉘터 정류장이 있다. 이곳은 도로 중앙에 위치한 정류장으로, ‘서초현대렉시온오피스텔’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많았다. 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역시 천장에 달린 냉‧온풍기를 한번 쳐다보다가, 에어커튼 밑으로 지나가보기도 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반면, 해당 정류장이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정보가 전혀 없는 시민들도 많았다. 에어커튼 밖에서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대학생 유모(23) 씨는 “천장에 뭐가 달려 있는 거는 봤는데, 딱히 설명을 듣지도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아서 그냥 여기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에어커튼 안에 들어가야 미세먼지가 차단된다는 말에는 “에어커튼이 뭔지도 모르고, 그런 것에 대한 안내문이나 설명문이 버스 정류장에 없으니, 서울시에서 이런 걸 설치해도 시민들이 잘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현재 서초구 스마트 에코쉘터는 주민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서초구가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에는 “청년수당 나눠주는 것보다 주민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런 정책이 훨씬 낫다”, “실제로 이용해봤는데 정말 좋았다”, “주민의 일상을 고려한 행정이다” 등의 댓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이날 ‘서초현대렉시온오피스텔’에서 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유 모(45) 씨는 "일상생활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행정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정류소에 직접 미세먼지 차단 기능을 더해주니 안심이 된다"면서 "버스 기다릴 때 대책 없이 미세먼지를 마셨는데 이제는 에어커튼 안에 들어와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 에코쉘터 한 곳 설치비용이 6000만 원에 달하기 때문에 예산 낭비라는 부정적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 에코쉘터 설치비용은 100% 민간이 부담한다. 서울 내 버스정류장은 관련 버스 업체가 정류장을 만들고, 정류장에 넣는 광고로 이익을 얻는다. 올해 안에 확장되는 스마트 에코쉘터 제작비용도 모두 버스 업체가 지불한다.
서초구는 시범 운영 후 단점을 보완해 올 상반기 반포역과 강남역, 고속터미널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5곳에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앞으로의 미세먼지 농도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점점 에코쉘터 정류장 수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6일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조승연 연세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국가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정류장에 에어 커튼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에어커튼 안으로 먼지가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 교수는 이어 “국가가 중국과 협약을 맺는 등 외교적 노력을 하거나 차단 시설을 설치하는 등 행정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모두 중요하다”면서 “그중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가 시민들이 개인적 차원에서도 미세먼지를 회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