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상권 몰락에 멈춰선 민자역사…'부활의 기적 소리'

입력 2019-03-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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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신촌의 유령건물' 신촌역사, '창동의 흉물' 창동역사

서울특별시 지하철에는 ‘유령역’과 ‘괴물역’이 있다.

한 곳에는 텅 빈 건물이 쓸쓸히 남아있고, 다른 한 곳에는 짓다 만 건축물이 9년 째 방치돼 있다. 경의·중앙선 신촌역과 1호선 창동역이다. 1986년 낡은 역을 현대화해 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로 민자역사 사업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15곳이 선정됐다. 창동역과 신촌역도 2000년대 중반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10년여 년이 지난 지금 두 역은 모두 회생의 기로에 서있다. 재기의 꿈을 꾸다 몰락한 두 역을 조명해본다.

◇ '신촌의 유령건물' 신촌역사 = “아직도 안 망했네.”

신촌 소재 대학생들에게 신촌역사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연세대학교와 이화여대 캠퍼스 코앞에 있지만 찾아갈 일은 손에 꼽는다. 재작년 연세대를 졸업한 A(27)씨는 “다 해봐야 10번 정도 신촌역사에 가봤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이화여대를 졸업한 B(27)씨도 1년에 두 번 정도 메가박스를 간 것이 전부다.

▲신촌역사 전경

2012년 이후 6층 규모의 신촌역사에는 메가박스만이 유일하게 영업을 해왔다. 최근 면세점이 들어서긴 했지만, 찾는 사람은 여전히 적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이자 ‘유령건물’ 신촌역사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부터 용산과 신의주를 오가는 경의선에 속해있던 신촌역사가 민자사업으로 재탄생한 것은 2006년이다. 멀티플레스 운영업체 메가박스와 동대문 밀리오레를 운영하는 성창F&D 등이 참여했다. 1~4층에는 밀리오레가 입점하고, 5~6층에는 메가박스가 들어섰다. 하지만 개장 후 입점률이 30%에 그쳤다. 2009년에는 이마저도 20%로 줄고, 2012년에는 메가박스만이 남았다.

가장 큰 문제는 유동인구의 부족이었다. 일단 경의·중앙선 신촌역의 열차 배차가 거의 없어 ‘기차역’으로서 유입인구가 많지 않다. 시간 당 한 대 꼴로 정차하는 상황이다. 홍대나 이태원 등 주변 상권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더해 인터넷 쇼핑몰, SPA 브랜드 등 의류업계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부상한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동대문 도매 야간 시장의 메카인 밀리오레의 영업방식을 성창F&D이 시장조사나 트렌드조사 없이 그대로 밀어붙인 것이 패착이라는 평가다.

▲신촌역사 전경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앞서 성창F&D이 투자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경의선이 복선화되면 하루 5~10분 간격으로 모두 288회의 열차가 운행된다"고 과장광고를 한 것. 기차들이 신초역을 288회 ‘지나가는 것’은 맞았지만, 실제로 역에 멈추는 기차는 거의 없었다. 투자자들은 분양대금 반환소송을 제기하고, 대법원은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성창F&D와 신촌역사의 법정공방도 있었다. 성창F&D는 신촌역사를 상대로 선납한 10년치 임대료 반환 소송을 걸었다. 법적으로 30년치 임대료를 미리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신촌역사는 위헌소송으로 맞불을 놓고, 헌법재판소가 신촌역사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났다. 양측의 계약은 2014년 끝났다.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다가 지난해 9월 회생절차가 시작됐다. 회계법인의 조사에서 임대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존속가치청산가치보다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법정관리인은 인가전 M&A에 착수했다. 매각주관사에 삼일회계법인이 선정되고,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예비입찰 제안서를 받았다. 삼라마이더스(SM)그룹이 조건부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조만간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나마 최근 탑시티면세점이 케이박스로부터 189억 원을 투자받아 신촌역사 2~4층에 면세점을 차린 것이 긍정적다. 아직 2~3층은 내부공사중이며, 4층만 부분오픈한 상태다. 면세점 관계자는 “상반기 중에는 그랜드오픈할 예정”이라며 “본격 영업은 그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창동의 흉물' 창동역사 = 창동에 20년째 거주 중인 C씨는 창동역을 지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골조가 훤히 드러난 민자역사 때문이다. 그는 "지나갈 때마다 민자역사를 보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주거 환경 개선한다고 주변 보도블럭 정비하고 하는데 저 흉물이나 얼른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한다.

창동역 민자역사 사업은 2004년 시작됐다. 지하 2층, 지상 10층, 총 12층 규모의 규모 복합시설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2009년 분양률이 79%에 이르며 깨나 순탄히 사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창동역사는 회생의 기로에 서있다.

▲창동역사 전경(연합뉴스)

문제는 사람과 돈이었다. 경영진 비리가 터진 것이다. 공사비로 사용해야 할 분양대금을 경영진이 멋대로 유용한 것이 드러났다. 결국 이들은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되며 일단락 났다. 하지만 창동역사의 공사대금이 사라졌다. 2010년 11월 공사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공정률 27.57%, 5층. 그 이후로 9년 동안 민자역사는 ‘재생’이라는 허울만 남긴 채 방치돼왔다.

대주주의 무책임한 행태도 창동역사의 발목을 잡았다. 화근은 창동역사의 지분 67.29%를 보유한 서초엔터프라이즈였다. 정확히 말하면 짧은 기간 동안 세 번이나 바뀐 서초엔터프라이즈의 주인들 때문이다.

원래 서초엔터프라이즈의 대주주는 BHK였다. BHK는 지분 전량을 디엔케이하우징에 매각한다. 그리고 디엔케이하우징은 이를 또 블루센트럴스테이션에 또 팔아넘긴다. 문제는 두 번째 매각 과정에서 불거졌다. 블루센트럴스테이션이 매각을 위해 한화자산운용으로부터 차입한 310억 원 규모의 자금에 대한 보증을 창동역사가 선 것이다. 인수 대상 기업의 보증을 받아 그 기업을 사들이는, 기묘한 구조로 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2011년 2월, 만기일이 지났지만 블루센트럴스테이션은 차입금을 갚지 못했다. 한화자산운용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보증을 선 창동역사에 기한이익상실과 연대보증이행청구를 통지한다. 공사대금도 없어 공정이 중단된 창동역사다. 결국 부도처리되기에 이른다.

▲창동민자역사 조감도

‘설상가상’ 창동역사를 보다 못한 수분양자 5명이 2017년 12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창동역사의 상태는 처참했다. ‘0원.’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삼일회계법인이 매긴 창동역사의 청산가치다. IB업계 관계자는 “창동역사는 코레일에서 임대해주는 형식이라 자산이 없다”고 설명했다. 파산하면 채무자들은 단 1원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신촌역사와 마찬가지로 인가전 M&A를 통한 변제 계획을 세웠다.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지난해 HDC현대산업개발과 조건부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초 본입찰을 실시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 제시한 조건 이상의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HDC현대산업개발이 새로운 주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우선 수분양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매각 대금으로는 원하는 만큼 변제를 받지 못한다며 반발한다. 이들의 반대에 따라 회생계획안이 통과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원점이다. 시간도 많지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7월이 지나면 창동역사 회생절차가 자동 종결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 전에 계획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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