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칼럼니스트
애석하게도 이 회담의 결과는 합의가 아니라 결렬이었다. 트럼프는 나쁜 거래(bad deal)보다는 거래하지 않음(no deal)이 옳다고 하면서 결렬을 선택했다. 회담 전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기대와 예측을 내놓았다. 작은 거래(small deal)가 이루어질 거란 예상이 있었고, 큰 거래(big deal)가 이루어질 거란 추측도 있었다. 합의에 뒤따르는 문제점 역시 다양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이 결렬될 수 있음을 예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한반도 주위 국가의 통치자들 역시 결렬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회담 결렬은 거의 모두에게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진 게 사실이다.
회담 결렬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 중에는 다름 아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있다. 회담 전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당당한 걸음걸이에서도 그가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과 맞장뜨는 담판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웃음을 지었지만 회담 전의 밝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트럼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만남을 통해 그는 트럼프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파악했던 것 같다. 게다가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 탄핵이 거론될 만큼 궁지에 몰려 있지 않은가. 그가 작은 성과라도 거둬 국면을 전환하려는 욕심 때문에 성에 차지 않은 미끼라도 덥석 물 거라고 김정은은 판단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작은 거래로 낙착되는 게 아닐까 염려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좀 거칠게 말하면, 그를 미덥지 않은, 허풍 심한 장사꾼 정도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중대 사안을 성급하게 처리해 버리고 성과를 과대 포장하기나 일삼는 그런 인물이라고.
어쨌든 결과만 놓고 평가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의 승자는 트럼프이고 패자는 김정은이다. 부인할 수 없는 성적표다. 트럼프가 김정은보다 적어도 몇 수 위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김정은에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음이 명확해졌다.
왜 김정은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케이오 펀치와 맞먹는 패배를 맛봐야 했을까? 결정적으로, 트럼프란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피(知彼)’, 즉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보다 상세히 말하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얼마나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 점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김정은은 간파하지 못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 전반에 관해 꿰뚫고 있음을 말해 주는 자료를 정상회담 막판에 코앞에 들이대었을 때 김정은이 얼마나 놀랐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상회담을 추동한 북한 핵의 가치는
이런 전술적 측면 말고도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국가 이익의 계산에 관한 것이다. 모든 나라 최고 통치자들은 자기 나라 이익을 우선시한다. 심지어 순수한 문화 교류조차 최우선의 가치, 궁극적 지향점은 자국의 국익이다.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 역시 국익 극대화와 관련된 것이다.
문제는 정확한 국익 계산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유동적 측면이 작지 않다는 데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 시설 등의 가치를 계산해 보자. 미국 대통령을 하노이 정상회담까지 오도록 만든 추동력(‘가치’라고 해도 된다)은 바로 그 핵무기임이 분명하다. 실로 엄청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한 핵의 가치는 정상회담을 변곡점(變曲點)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가지 않을 도리가 없게 돼 있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북한을 계속 압박할 수 있는 다양한 제재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러하다. 시간은 결코 김정은 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판단력·학습능력·유연성 세 요소
리더십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뛰어난 학습능력이다. 역사상 지혜로운 지도자로 평판이 자자한 인물의 경우도 그런 탁월한 지혜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게 아니다. 업적이 찬란한 지도자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오류와 실패가 적지 않았다. 결국 위대한 지도자와 보통 지도자의 차이는 실패나 오류가 있고 없음으로 갈리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나 오류를 발전과 성공의 계기로 삼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
역사상의 훌륭한 지도자는, 직면한 문제와 싸우면서 그리고 다른 나라나 지도자의 다양한 성패 사례를 살펴보면서 자기 역량을 계속 키워 나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말하자면 비범한 리더십은 성장 지향적 태도에서 배양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런 태도의 강점은 문제 해결과 난관 돌파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성과를 극대화한다는 데 있다. 만일 김정은이 남다른 학습능력을 지녔다면, 중국이나 베트남이 최근 20~30년 사이에 미국과의 적대 관계를 풀고 체제를 과감히 개혁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상황이든 환경이든, 그리고 거기에 놓인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시시각각 변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헤라클레이토스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예전 방식에 집착해선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 경직된 사고나 구태의연한 대응은, 특히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유연성이 부족하면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노자(老子)가 물로부터 유연성을 배워야 함을 누누이 강조한 까닭을 알 만하다.
우리말에 ‘총명(聰明)하다’라는 긍정적 평가어가 있다. 이 단어는 ‘귀가 밝고[聰] 눈이 밝다[眀]’는 데서 나왔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청각과 시각 기능이 매우 좋다는 말이다. 의미가 이처럼 낮은 지평에서 생겨났지만 지혜롭고 창의적인 견해를 잘 받아들이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것으로 추상화, 확장되었다.
권력도 공고화하고 평화 다지는 길
판단력과 학습능력, 그리고 유연성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다면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통치자의 리더십에서도 이 세 요소는 핵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총명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앞에서 말한 판단력과 학습능력, 그리고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 관련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시라요, 대통령님!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갖고 있는 핵무기와 시설, 그리고 대량살상 무기는 이거이 전부입네다. 이거를 몽땅 원하시는 대로 투명하게 검증받고 또 폐기하겄습네다. 그러니까 대통령께서도 이런저런 제재를 몽땅 풀어주시라요. 우리 공화국이 발전할 수 있게 통 크게 도와주시고요. 한꺼번에 아주 통 크게 해치워 버립시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시점부터 김정은을 ‘총명한 통치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를 ‘총명한 지도자’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날은 김정은 자신의 권력이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북한의 진정한 발전과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가 뿌리내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오로지 북한의 국익이라는 극히 타산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런 결단에 따른 성과는 북한과 김정은을 가장 큰 수혜자로 만들 게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