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인하 주문하면서 가계부채 우려..단기부양은 언발에 오줌누기, 잠재성장 확충해야
‘모순(矛盾)’.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한 주 국제통화기금(IMF) 미션단의 연례협의 발표 결과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 경제가 성장 둔화와 부진한 고용 창출로 중단기적인 역풍을 맞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인 2.6%에서 2.7%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9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것이다. 9조 원이라는 수치까지 못 박은 것은 이례적인 일.
더불어 금리인하 여부는 한국은행이 결정할 부문이라고 전제했지만, 한은은 명확히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금리인하를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 가계부채 비율은 높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당국은 금융산업 복원력을 보존하기 위해 적절히 타이트(tight)한 거시건전성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마디로 경기부양을 위해 완화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주문하면서도, 가계부채 문제를 우려해 긴축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셈이다.
◇정부·여당 기다렸다는 듯 부양에 초점, 전문가들은 뒷북 비판 = IMF의 추경 권고가 있던 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미세먼지 추경이 고려된다면 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을 거쳐 추경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세먼지 대응은 일차적으로 예비비 지출 등 기존 재원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발 나간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반색하는 분위기다. 14일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현안브리핑을 통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IMF 권고치에 달하는 추경예산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금리 결정의 당사자인 한은은 공식적 입장을 내놓진 않고 있다. 다만 한은의 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통화정책 방향 문구에 보면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도 완화적 수준”이라며 “IMF도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지금의 완화적 수준을 유지하라는 것인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IMF 권고를 뒷북 지적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문재인정부의 경제교사이자 한때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현 정부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미스터(Mr.) 쓴소리’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IMF는 매우 매우 신중(?)하다. 그래서 그런지 뒷북을 잘 친다. IMF의 조언을 핑계로 복지 중심의 비생산적 단기 대책이 양산될까 두렵다.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의 개념이 경시된 채로”라며 꼬집었다.
앞선 금통위원도 “그동안 IMF 권고는 대체로 늦은 감이 있어 왔다. 이번에도 지난해 경제 상황에나 맞는 권고”라고 평가절하했다.
◇빚내 집 사라는 초이노믹스의 교훈 = 박근혜정부 시절 소위 빚내 집 사라는 초이노믹스(최경환+이코노믹스) 정책으로 우리 경제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었고, 기준금리도 그 유명한 “척 하면 척” 발언을 통한 압력행사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2.00%)보다 더 낮은 1.25%까지 낮췄다. 하지만 성장률은 2014년 3.3%로 반짝 상승했을 뿐 다시 2%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반면 5~6%대로 안정적 증가세를 보이던 가계부채 증가율은 초이노믹스 시행 직후인 2015년 10.9%로 급증하더니 2016년 11.6%를 기록하며 2006년(11.8%)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가계부채 총량도 지난해 처음으로 1500조 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세계 비교가 가능한 국제결제은행(BIS)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가계빚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6.9%로 43개국 중 7위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가 여전히 빠르다는 점이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0.9%포인트 늘어 중국(1.2%포인트) 다음으로 가장 빨랐다.
그 사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에서 우리 경제가 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은 추정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2011~2015년) 3.0%에서 3.4%이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후반(2016~2020년) 2.8%에서 2.9%로 주저앉았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6%대를 유지하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2001~2005년 4.8~5.2%, 2006~2010년 3.7~3.9%)를 거치며 급격히 하락했다.
한은은 올 상반기 말까지 새롭게 잠재성장률을 추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미 기존 전망치(2.8~2.9%)보다 낮을 것임을 공식화한 바 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사회·경제적 구조개혁 나서야 = “최근의 경기회복이 중장기적 안정 성장궤도 진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경제 구조조정의 부단한 추진, 수출 증대 및 외환시장 안정 기반 강화 등에 적극 노력하는 한편 경기침체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도 힘써야 할 것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1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에서 국내외 경제동향을 종합평가하는 결론 부문에 나온 문구다.
2017년 7월 한은은 잠재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잠재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서비스업 발전 미흡과 높은 시장규제 등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 경제 성숙화와 불확실성 증대 등에 따른 투자 부진을 꼽았다. 향후 인구고령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예상됨에 따라 노동공급 요인의 잠재성장률 하방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경기 모멘텀 확보를 위한 거시경제정책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구조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금의 인구고령화 추세만으로도 경제성장률이 이르면 15여 년 후인 2036~2045년 0%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 이후(2046~2055년 -0.1%)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기부양책은 인기영합적일 수 있겠다. 하지만 가라앉고 있는 우리 경제를 막을 수 없음을 이미 경험했다. 20여 년 전인 1999년이나 지금이나 구조조정 내지 구조개혁이 답이라는 결론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