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경고가 나왔다. 한은이 19일 발표한 ‘최근 전세시장 상황 및 영향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한은은 앞으로 전셋값이 10% 떨어질 경우, 전체 211만 임대가구(집주인) 가운데 1.5%인 3만2000가구가 예·적금 해지나 추가 대출로도 자금이 부족해 전세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때는 이 비중이 14.8%까지 올라갈 것으로 파악됐다.
올 들어 1∼2월 거래된 아파트 중 전셋값이 이전 계약 시점인 2년 전보다 내린 곳은 52%나 됐다. 2017년 20.7%, 작년 39.2%에서 급증한 수치다. 하락률은 14.9%가 10∼20%, 7.1%가 20∼30%, 4.7%는 30% 이상이었다. 전셋값이 10% 이상 떨어진 곳이 절반을 넘는다. 이런 추세라면 어느 때보다 역전세난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방의 전세값이 낮아진 아파트 비중은 2017년 35.8%, 작년 50.8%, 올해 1∼2월 60.3%로 급격히 늘었다. 보증금 규모가 작은 아파트의 하락폭이 더 컸다. 서울은 전셋값이 떨어진 곳이 2017년 10%에서 지난해 16.7%, 올해 1∼2월 28.1%로 증가했다.
한은은 전셋값 하락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집주인들이 대체로 고소득자이고 실물자산이 많아 재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다. 임차인들의 전세자금 대출건전성도 아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전세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지역이나 부채가 많은 임대주택은 금융 및 보증기관의 신용위험이 증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역전세난이 확산할 경우 결국 임차인인 무주택 서민들의 피해가 커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이 자산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이를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맡고 주거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값이 많이 내린 일부 지방에서는 매매 가격이 전셋값보다 싼 곳도 속출하고 있다.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모두 반환하기 힘든 ‘깡통주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2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집값과 전셋값 하락이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역전세난이나 깡통주택의 부작용은 부동산시장 자체를 왜곡하고 민생의 어려움만 가중할 가능성이 높다. 역전세난이 사회문제로 번지기 전에 세입자들이 안심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며, 시장이 정상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