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비닐 몰래 두 장 챙겨서, 밖에서 담아 가세요.”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된 첫날,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회용 속 비닐 사용이 빈번하게 눈에 띄었다.
1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은 해당 마트 창립 21주년 기념 할인 이벤트가 있는 날. 평소보다 많은 고객이 몰리면서 매장은 혼잡스러웠다.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 뉴스를 접하지 못한 고객들은 계산대에 가서야 비닐을 매장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처럼 요구르트 한 묶음을 매장 내 비치된 속 비닐에 담았던 심 모(32) 씨는 계산대 직원에게 비닐을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라며 제지를 당했다.
심 씨는 “매장 내에 과일이나 채소 코너 앞에 롤 비닐이 버젓이 비치돼 있으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계속 롤 비닐을 써도 되는 줄 알고 사용할 것”이라며 “비닐봉지를 못쓰게 하려면 아예 매장 내에 롤 비닐을 치워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지만, 마트가 롤 비닐, 일명 속 비닐을 치우지 않는 이유는 환경부가 명시한 예외 사항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생선이나 고기, 두부, 아이스크림 등 액체가 샐 수 있는 제품이나 흙이 묻은 채소, 물기가 있는 채소는 비닐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트 직원들이 액체가 샐 수 있는 제품 기준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가 직접 바나나를 속 비닐에 담아 계산대로 가져가자, 계산하던 직원은 옆 직원에게 “바나나는 속 비닐에 담아도 되는 건가?”라고 물었고, 옆에 있던 직원도 “과일이니까 되지 않을까?”라며 대답을 흐렸다.
이후 기자 뒤로 이어진 손님들은 채소, 과일, 유제품 등 대부분 제품을 각각 다른 속 비닐에 담아왔고, 계산대 직원들은 비닐을 일일이 골라내느라 계산이 지연됐다. 계산 도중 직원들은 특정 과일이나 채소에 속 비닐을 사용해도 되는지 계속 헷갈려 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판매 직원은 손님에게 속 비닐을 사용할 수 있는 꼼수를 알려주기도 했다. 한 채소 코너 직원은 단골로 보이는 손님에게 “계산대에서 종이봉투 구매하면 돈 드니까 속 비닐 두 장을 가방에 넣어 나가서, 물건들을 속 비닐로 옮겨 담으면 된다”라고 팁을 전했다.
오렌지 판매대 앞에는 아예 오렌지 전용 일회용 봉투가 비치돼 있었다. 오렌지를 구매하지 않은 고객들도 해당 봉투를 여러 장 가져가, 다른 물건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렌지를 구경하던 장 모(62) 씨는 “일회용 봉투를 사용 못 하게 하려면, 이런 봉투들도 다 못 쓰게 해야지 아예 대놓고 비치해두니 누가 안 가져가겠냐”라고 말했다.
마트 근처에 있는 백화점 식품관은 마트보다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가 엄격했다. 이곳에서도 오렌지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속 비닐은 아예 비치돼 있지 않았고, 판매대에는 손잡이 없는 종이봉투만 놓여있었다.
기자가 종이봉투에 오렌지를 담으니 종이봉투 밑 부분이 살짝 찢어졌다. 판매대 직원에게 종이봉투 말고 다른 것은 없는지 묻자, 직원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돼 어쩔 수 없으니, 종이봉투를 하나 더 담아서 드리겠다”면서 “계산대에서 손잡이가 있는 친환경 종이쇼핑백을 추가로 구매해 가져가면 뜯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소 코너 냉장실에 놓여 있는 청경채를 구매하려고 하자, 판매 직원은 냉장 판매대 앞에 놓인 롤 비닐을 뜯어 청경채를 담아줬다. 직원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규제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물기가 있는 채소를 속 비닐을 사용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백화점 식품관 곳곳에는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제한 안내’ 공지가 붙어 있었고, 판매대에 올려둔 상품들은 모두 종이봉투에 담겨 있었다.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종이봉투에 든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 등을 그대로 계산대로 들고 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직원 김 모(54) 씨는 “과일을 담을 때 종이봉투 말고 비닐을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규제에 대해 설명하니 대부분 손님은 이해하는 모습이었다”면서 “최근에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 손님도 많아, 설명에 어려움은 없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