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인문학 저술가
행복한 이들은 늘 고요하고,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그들은 타인을 향한 감사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불행한 이들은 늘 근엄하고 냉소적이다. 그들 마음은 시끄럽고, 복잡하며, 까칠하고, 세상을 향한 불만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다. 롤프 도벨리는 ‘불행 피하기 기술’에서 “좋은 삶은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멍청함이나 어리석음, 유행 따르기를 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절제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행복한 이들은 행복의 강박증에 눌리지 않고, 그저 어리석음과 유행을 좇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무엇을 더 하는 대신 덜어내려고 애쓴다. 그들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한다. 내재적 가치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우정과 사랑, 자아의 충만감, 영혼의 성장, 가족과의 친밀함,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의 좋은 관계와 밀접한 그 무엇이다.
우리는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어떤 정치가는 지상 낙원을 만들겠다고, 사람들이 갈망하는 바로 그것을 주겠다고 공약을 한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정치가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순간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린다고 말한 것은 칼 포퍼라는 철학자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상낙원을 세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으로 안내한다”라고 썼다. 정치가들은 상품, 소비, 부가 행복의 척도인 걸로 오도하면서 국내총생산의 수치를 행복의 지표로 제시하지만 국내총생산의 수치가 국내총행복의 측정치로 환원되는 일은 없다.
많은 정치가들이 행복을 단 하나의 실체, 단 하나의 형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행복은 개별자가 감당하는 실존 조건들, 즉 건강, 직업, 환경, 소득, 교육 등 복합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토대 위에서 수백만 개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최대 다수가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멋진 신세계’는 신기루다. 정치가 단 한 번도 행복을 빚어낸 시대는 없었다. 그나마 ‘좋은 정치’는 단지 우리를 최악의 불행을 피해 차선의 불행으로 인도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나쁜 정치’는 대규모의 불행을 만들어 온 세계에 퍼뜨렸다.
행복은 재물을 쌓은 뒤 그것을 꽉 움켜쥐는 일이 아니다. 행복은 나누고 베푸는 덕성과 이타성의 실행에서 나오는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다. 행복한 자는 기쁨이 넘쳐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행복으로 안내하는 길은 없다. 행복은 다양한 찰나와 경험 속에서 번쩍이며 나타난다. 그렇기에 행복은 유한한 삶에서 겪는 무한의 경험이다. 행복은 정서적 충만의 순환이고, 끊이지 않는 기쁨과 지복에의 믿음에서만 가능해진다. 찰나에서 영원을 보는 것,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엿보는 게 행복이다. 행복이 불가능성 속에서 향유되는 것이라면, 행복은 신기루와 같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은 무한과 같이 인간이 촉지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무한은 유한성에 갇힌 인간에게는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으로 애초에 형태도 실체도 없다. 무한은 우리 경험 저편에 신기루처럼 떠 있다. 행복이 무한의 향유라는 점에서 망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행복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어서 만지거나 손아귀에 쥘 수가 없다. 행복을 누리는 일은 한없이 더디고 어렵지만, 불행이 닥치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행복은 말이 끄는 마차의 속도처럼 더디고, 불행의 속도는 빛과 같은 광속(光速)이다.
내 머리와 팔다리는 멀쩡하고, 게다가 나는 책을 읽고 쓰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한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나는 가끔 택시를 타고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박지웅 시, ‘택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은 ‘무한’이란 이름의 장소가 아닐까? 무한이란 촉지가 불가능한 추상, 이데아, 분할할 수 없는 전체, 진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저 무한의 끝에서 와서 무한의 끝으로 돌아간다. 30대 초반 나는 수행자도 아닌데 가출을 시도했다. 집을 나와 개포동 서민아파트를 월세로 얻어 살았다. 그 당시 개포동 서민아파트는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 나는 귀찮아서 겨우내 난방도 않고, 밥도 끓이지 않으며 보냈다. 아파트에는 밤늦게 돌아와 잠만 자고 출판사로 나갔다가 밤늦게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인가는 만취해서 택시를 탔는데, ‘개포동’이란 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택시기사에게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경험을 행복이 가득했던 것으로 윤색한다. 그들은 말한다. “옛날엔 참 좋았어.” 과연 ‘행복한 과거’란 사실일까? 대개는 행복했다는 과거란 시간의 작용으로 우리가 겪은 역경과 불행의 직접성이 마모되면서 생기는 망각의 달콤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윤색, 즉 ‘거짓기억 증후군(false memory)’의 결과물이다. 개포동 서민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시절,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막 30대로 들어선 나는 외롭고 불행했다. 직원들과 합심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출판사는 번창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왜 불행했을까? 누리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어서 불행했다. 입에 넣는 밥이 부끄럽고, 햇빛 아래 걷는 게 부끄러워서, 어여쁜 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견딜 수 없어서 슬프고 불행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불신이 깊어지고, 그 내상(內傷)은 깊었다. 나는 불행의 밥을 먹고, 불행의 잠을 잤다. 한 계절에 하루만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나는 김이 뿌옇게 서린 동네 목욕탕에 가서 아이들의 등과 팔다리에 비누칠을 해줄 때 행복했다. 목욕탕을 나와서는 아이들을 고깃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아팠다. 이제 아이들은 성장해서 저마다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떠났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나 더 불행을 견뎌야 할까? 그 대답은 내게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곧 벚꽃이 지고 왔던 봄은 떠난다는 것, 봄이 지나면 곧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 우리는 여름의 눈부신 햇빛 아래서 눈을 가늘게 뜨고 녹음 우거진 숲과 반점처럼 땅에 드리운 그늘을 바라본다. 바깥에서 돌아와 땀 젖은 몸을 씻은 뒤 잘 익은 복숭아를 깨물 때 단 복숭아 즙이 입가를 적신 채 흘러내린다. 우리는 여름 과일의 풍미와 향기를 듬뿍 맛보며 행복감에 취할 것이다. 그렇건만 봄날의 화사한 꽃들, 여름의 빛과 영광은 얼마나 빨리 사라질 것인가? 행복은 대상의 소유가 아니라 경험의 향유에서 가능해진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꽉 잡으시라. 매화, 산수유, 벚꽃, 모란, 작약들이 벌이는 꽃 잔치와 사방에 넘치는 여름의 눈부신 빛, 살려는 의욕으로 충만한 이 찰나에 누리지 못한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