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지역 재개발·재건축 사업들이 서울시의 무리한 요구로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남 재건축은 어렵지만 강북 재건축은 균형발전 차원에서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무색한 상황이다.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속도가 가장 느린 성수2지구에 발이 묶여 전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서울시가 진척 수준이 각기 다른 1~4지구 정비사업을 발맞춰 진행하길 바라면서 심의를 지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까지 조합 설립을 못 하면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되는 2지구의 경우 사활을 건 동의서 징구에 나서고 있다. 현재 55% 동의율을 달성한 추진위는 조합 설립 조건인 75%를 확보해 6월 중으로 조합창립 총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1·3·4지구도 2지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지구가 엎어지는 상황이 올 경우 그간 준비해오던 정비계획을 송두리째 바꾸라는 요구를 직면할 수 있어서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4개 지구가 기반시설 계획을 공유한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달 말 성동구에 성수2지구가 일몰 기한을 넘겨 해제될 경우를 대비한 도로·공원 조성 계획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성수4지구 건축·경관통합심의 안건을 사실상 보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척이 가장 빠른 4지구가 나머지 구역과 보조를 맞추라는 서울시 요구가 다시 한번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19일까지 구청에 보완 계획을 제출하기로 했다”며 “2지구는 ‘지구’이지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정비구역 일몰제로 인한 구역 해제 대상인지를 두고도 서울시는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2지구 일몰 도래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고, 필요할 경우 일몰 기한 연장도 요구할 수 있는데 마치 일몰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가정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횡포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 관계자는 “정비구역끼리 속도 맞추기를 요구할 거면 뭐하러 지구를 나눠놓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강변북로 지하화를 포함한 용산 마스터플랜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얼토당토않아 차라리 속 시원하게 집값 오를 까봐 그러는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용남 도시와경제 소장은 “3월 발표된 도시건축혁신안에 포함된 사전공공기획 절차가 ‘정비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함’인지, ‘정비사업의 시작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함’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성수동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며 “강남 대체 주거지로 거론되는 성수동에 대한 규제는 강남 재건축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에 있는 강북 주요지역 정비사업을 ‘일단 멈춤’으로 돌려세우려는 서울시의 의사표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촌 왕궁아파트도 임대주택을 늘리라는 서울시 요구에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왕궁아파트 조합 측은 1대1 재건축 방식으로 임대주택 없이 재건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조합의 정비 계획안을 반려하며 임대주택 기부채납을 권고했다. 서울시는 왕궁아파트 부지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가구 수를 기존 250가구에서 300가구 이상으로 늘리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측은 이에 대해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하고 조합원 의견을 묻는 총회도 5월께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