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의 엄마, 아빠는 누구일까. 다소 황당한 질문인 것 같지만, 법적으로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있다.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는 출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출산한 사람이 법적으로도 엄마가 된다. 그런데 결혼한 여성이 출산한 아이라도 남편이 아이의 아빠라고 100%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해서 아빠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민법은 결혼 한 날로부터 200일 이후에 태어나거나 이혼한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아이는 남편의 아이로 본다고 정해 두었다. 다만 남편이 아내와 떨어져 장기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와 같이 외부에서 보기에 도저히 남편의 아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때에는 이 기간 안에 태어난 아이라도 예외적으로 남편의 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 기간 안에 태어난 아이라도 실제로는 남편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민법은 이 기간 안에 태어난 아이지만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기 위한 방법도 마련해 두었는데, ‘친생부인(親生否認)의 소’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송을 언제나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2년 안에 제기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지만, 호적(현재는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울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출생했을 때는 친자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서 내 아이가 아니라고 판결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런데 어떠한 사정이 있어 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2년 안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면, 내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함에도 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워버릴 수 없게 된다.
오랜 기간 같이 살지 않았던 경우와 같이 외부에서 보기에 도저히 친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전자 검사 결과 내 자식이 아니라도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지 않으면 내 호적에서 지울 수 없다는 지금의 판례는 1980년대 초반에 나온 것이다. 당시는 유전자 검사같이 친자 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방법이 널리 활용되지 않았던 때다. 유전자 검사는 거의 100% 확률로 친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인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자식이 아니라고 확인되었음에도 친생부인의 소를 하지 않으면 내 호적에서 지울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다. 특히 친생부인의 소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간이 지나면 내 호적에서 지울 방법이 없다.
얼마 전 대법원은 이와 같이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지 않더라도 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에 관해 22일 공개변론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공개변론을 한다. 그만큼 대법원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기존의 판례를 변경할 것인지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가족 관계가 형성되고 변화하고 있다. 법 제도와 판례 역시 그에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공개변론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시청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