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국장대우 정치경제부장
경제성적은 낙제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다. 저소득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 소비를 진작하고 기업투자와 생산을 확대하는 선순환으로 성장을 이루겠다는 구상이었다. 임금주도성장이다. 최저임금을 2년간 29.1%나 올린 이유다. 결과는 참담했다. 소비는 정체돼 있다. 생산과 투자는 급감했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벼랑 끝에 섰다. 버팀목인 수출도 5개월째 내리막이다. 경제성장률 저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1분기 성장률은 -0.3%였다. 말 그대로 ‘성장 쇼크’다.
일자리는 어떤가. 매년 30만 명 이상 늘던 취업자 수는 지난해 9만700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투입된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 원이다. 정부가 만든 일자리 사업에 81만4000명을 참여시켰다. 이 중 민간 일자리로 연결된 취업률은 16.8%였다. 83.2%는 정부 지원이 끊기자 다시 실업자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일자리 참여자의 69%가 노인이었다. 통계를 위한 1회성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는 방증이다. 경제활동 중추인 3040 고용이 18개월째 줄고 청년 체감실업률이 25.1%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게 일자리 현실이다.
정치는 어려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정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다.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장외로 나간다. 협치는 온데간데없다. ‘식물국회’가 된 지 오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한국당도 문제이지만 여권의 책임이 크다. 민생을 챙긴다며 추경까지 편성한 마당에 정치적 이해가 걸린 선거법 등을 밀어붙여 난장판을 만든 건 민주당이다. 여권이 민생을 챙길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남북관계도 휘청거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는 1년 만에 원점 회귀한 모양새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다 틀어졌다. 북한은 정상회담 제의에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
정치 경제 외교 어느 것 하나 정상인 게 없다. 이젠 하나씩 풀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여권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정책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경청, 양보를 통한 협치가 절실하다. 경제정책의 실패부터 인정해야 한다. 최악의 경제상황이 그 증거다. 좋은 지표만 골라 현실을 왜곡해선 곤란하다. “잘못했다”는 평가가 모든 여론조사서 과반을 넘긴 상황인데도 “한국 경제가 거시적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위기를 인정해야 극복도 가능하다. 출발점은 국민을 힘들게 하는 잘못된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당장 소주성은 재고해야 한다. 이미 2년의 실험에서 실패로 판명났는데도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며 소주성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심각한 불통이다. 정책을 바꿀 의지가 없다면 많은 전문가를 만나고 쓴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탈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모델로 삼은 독일에서조차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온 터다. 독일 유력 일간지 슈피겔은 최근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탈원전 정책이 값비싼 실패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U에서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내게 된 국민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몇 년 뒤 우리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북한문제도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정착은 정부의 책무이지만 원칙과 속도는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이 밝힌 ‘완전비핵화→북미수교→평화협정 체결’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비핵화 없는 한반도 평화는 사상누각이다. 원칙을 무시한 과속은 실익이 없을뿐더러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정치 복원도 여권 몫이다. “적폐청산이 이뤄진 뒤 협치가 가능하다”는 인식으론 정치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과거 집착은 문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통합과도 거리가 멀다. 협치의 출발은 통 큰 여권의 양보다. 여권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 시간은 여권 편이 아니다.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