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인문학 저술가
디지털 기기를 쓰는 젊은 인류는 ‘종이책’ 읽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고요한 눈’을 더 이상 갖지 못한다. 날마다 디지털 기기에 코를 박고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동안 젊은 인류는 ‘고요한 눈’을 키울 시간도 동력도 다 잃는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그토록 많은 정보 자극에 주의가 흩어지면 제 신체를 제어하고 텍스트에 몰입할 수 있는 인지적 인내심도 사라진다. 주의력의 질이 낮아진 탓에 ‘종이책’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비판, 성찰, 상상, 공감, 연역, 귀납, 분석의 기술과 능력에서도 점점 더 멀어진다.
우리는 읽기가 후천적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다 안다. 호모사피엔스의 뇌에는 읽기 능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인류는 몇만 년 동안 문맹인으로 건너왔고, 우리 선조의 ‘원시인의 뇌’에는 문자를 읽거나 해독하는 능력이 전무했다. 문자 발생 이후 6000년 동안 인류의 뇌는 읽는 학습을 반복하면서 ‘읽는 뇌’로 진화해왔다. 쿠덴베르크 활자가 나온 뒤, 인쇄와 제책의 기술 발달과 종이의 양산 같은 책의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졌다. 그러자 우리의 뇌는 읽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오늘날의 뇌는 디지털 기기들이 쏟아내는 수 기가바이트의 정보 과잉으로 인해 인지적 과부하에 걸린 상태다. 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단순하게 압축하고,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선별한다. 느긋한 읽기에서 멀어질 때 우리 뇌는 읽기 능력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복잡한 생각이 통용되지 않는 단순한 ‘원시인의 뇌’로 돌아간다. ‘원시인의 뇌’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읽기 회로들이 사라진 뇌다. 뇌는 종전의 협소한 지식에만 기대면서 나태한 휴면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디지털 뇌의 시대에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변화다.
그동안 강연 초대를 받아 다니면서 자주 ‘종이책’ 읽기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말했다. 책을 읽는 게 생업과 연결된 일이라 독서 강연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읽기는 내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읽기는 한마디로 타인의 사유와 경험을 취함으로써, 내 좁은 사유와 유한한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펼쳐진 책은 의미의 바다이고, 책은 우리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이끈다. 독서 행위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이고, 미지의 가능성과 세계를 향해 나서는 지적인 모험이다. 우리는 그 모험을 통해 정신의 쇠락, 그리고 망각에 맞서며 궁극의 나를 찾는 것, 새로운 인지적 지평을 키운다. 읽기의 효과는 뚜렷하다. 읽기는 전반적으로 정보편집력 키우기,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력 키우기, 여러 상황에서의 시뮬레이션 능력 키우기, 본질을 통찰하고 복잡한 사고 능력을 키우기에서 탁월한 성과를 드러낸다. 나는 날마다 책들을 구해 읽고, 그 읽기 경험을 통해 내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 내적인 변화가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책을 읽을 때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책은 떨어져 있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다리다. 읽기에 빠진 사람은 책을 매개로 눈앞의 현상세계와 내 ‘안’의 세계를 연결한다. 책은 돛대가 달린 배이고, 동시에 그 배는 독서삼매경에 빠진 우리 자신이다. 바람이 배를 밀고 저 먼 바다를 거쳐 낯선 나라로 데려간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문자를 보는 게 아니다. 우리의 눈은 문자 위에서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광학적 춤’을 추고, 뇌는 상상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이 춤과 날갯짓이 독서 행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 춤과 날갯짓으로 배는 저 먼 다른 나라로 나아간다. 읽기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꿈결 같은 여행을 한다. 읽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책에 코를 박고 시작한 ‘이상한 나라’로의 몽환적 여행에서 다시 현실로 귀환한다.
인지신경학자이자 읽기를 연구하는 학자인 메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를 흥미롭게 읽었다. 울프는 디지털 매체가 읽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리고 깊이 읽기가 사라진 뒤 이것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인지과학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펼쳐서 보여준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구술 문화 시대에서 문자 문화 시대를 거쳐 구텐베르크 이후 시대로 넘어오면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읽는 뇌’로 진화되었다. 뇌가 읽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회로가 바뀌고, 배선과 그 구조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지속적인 읽기는 뇌의 인지적, 언어학적, 생리학적 변화를 가져오고, 결국은 뇌를 돌이킬 수 없는 ‘읽는 뇌’로 바꾼다는 것이다. 울프는 ‘읽는 뇌’ 안에서 “뉴런의 연결망이 음속 수준으로 빠르게 반응하고, 다시 같은 속도로 뇌 구조 전역에 걸쳐 연결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읽는 뇌’는 깊이 읽기를 통해 인지적 공간으로 솟구쳐 올라 도약한다. 그 도약의 절정이 바로 통찰이다. 통찰은 지식의 저장고인 뇌 속에서 미지의 것이 홀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읽는 뇌’는 지식과 정보의 해석을 넘어서서 통찰이라는 눈부신 도약을 이루는 뇌다.
읽기는 외부의 지식과 정보를 내 뇌로 옮겨놓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이루어지는 인지적, 지각적 차원의 변화를 초래하는 활동이다. 지금 인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와 그것에 기반한 미디어의 확산에 우리 뇌는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이 디지털 기기로 이루어진 새로운 기술적 환경 안에서 우리 뇌는 “속도와 즉각성, 고강도의 자극, 멀티태스킹, 대량 정보의 선호”에 노출되면서 변화의 강제 속에 놓인다. 심심함에서 벗어나려고 조바심치면서 디지털 자극을 갈망하는 젊은 인류의 뇌는 ‘디지털 뇌’로 바뀐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젊은 인류는 더 이상 ‘읽는 뇌’의 집중력, 그리고 심심함이라 부르는 정신의 둔주 상태를 헤쳐 나가는 법을 영원히 잃어버린다. 멀티태스킹에 길들여진 ‘디지털 뇌’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에 잠긴 채 초점을 잃고 외부 자극을 찾아 항시 주의집중 과잉 상태에 놓인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매체가 만드는 새로운 기술문명적 환경에 맞춰 ‘디지털 뇌’로 살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고 느긋한 인지적 노력이 요구되는 ‘읽는 뇌’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문제는 ‘읽는 뇌’를 버리고 멀티태스킹이 쉬운 ‘디지털 뇌’로 갈아타는 순간부터 주의집중 과잉 상태에 빠지며 다시는 ‘읽는 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읽는 뇌’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종이책’도 사라진다. 그 빈자리를 디지털 기기들이 만드는 ‘가속의 에토스’가 채울 것이다. ‘종이 책’ 읽기에 느긋하게 빠져들며 관조적 삶을 즐기던 시대와 완전하게 결별한 뒤에 과연 인류는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