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 날을 기해 일어났던 만세운동이 오늘로 93돌을 맞는다. 6·10만세 운동은 3·1운동만큼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또 한 차례 일제에 항거한 뜻깊은 운동이었다. 이러한 투쟁을 누적해 가면서 끝까지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게 되었고 미군의 군정도 3년 만에 종식시킬 수 있었다.
오늘 6월 10일은 ‘6·10민주항쟁기념일’이기도 하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1979년 12월 12일에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1987년 1월, 당시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이 조사를 받다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이 사건이 은폐·축소된 것이 밝혀짐으로써 학생들의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 과정에서 당한 부상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자 범국민적 분노가 일기 시작하였고 6월 10일에는 당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가 집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장기집권을 위한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하려 하자, 범국민적인 저항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6월 29일, 마침내 노태우는 이른바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발표함으로써 항쟁은 국민의 승리로 끝났고 역사는 이 항쟁을 ‘6월 항쟁’이라고 기록하게 되었다.
불의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위대한 우리 국민!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쉽고 서글프고 부끄럽기도 하다. 왜 우리는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한바탕 빼앗기고 당한 뒤에야 피를 흘리며 항쟁하여 되찾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고선 다시 잊어버리고 방심하다가 또 당하고… 완전히 일본을 앞설 때까지,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이 될 때까지, 당했던 그날들을 똑똑히 기억하며 더 무겁고 무섭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