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작년 1800억 상각처리 '부실 심각'…일부 "새만금 개발ㆍ신재생에너지 기역경제 부활 기대"
“2015~2016년 한창 공장이 활발히 가동될 때는 모든 은행 직원들이 협력사에 직접 찾아가 ‘거래 좀 터달라’며 판촉 경쟁까지 벌였었죠. 하지만 지금 풍경은 정반대예요.”
군산 산업단지에 소재한 은행 지점 관계자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단면이다. 2017년과 2018년, 1년 새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문을 닫은 전후로 산단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불과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형, 동생’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던 협력사 대표가 다음 날 갑자기 연락 두절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협력사들처럼 은행들도 하나둘 산단을 떴다. 지금 산단에서는 기업은행과 신한은행 두 곳만이 협력사들 근처에 남아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군산산업공단에 지점을 둔 한 은행이 상각 처리한 현대중공업과 한국GM 협력사에 대한 채권 규모는 1800억 원 수준이다. 기존 채권이 3000억 원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3분의 2 수준이 부실화한 것이다. 상각처리란 한마디로 부도 등으로 빚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없는 빚’으로 치부하는 절차를 말한다. 남은 1200억 원 규모의 여신은 GM 협력사 15곳, 현대중공업 협력사 20곳 등에 나가 있다.
또 다른 은행의 경우 전체 여신의 1%인 40억 원가량이 부실채권으로 묶여있다. 은행은 자산 건전성이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에 해당하는 ‘고정 이하 여신’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한다. 본점에서는 상각처리 및 부실처리 된 여신을 담보물 경매, 보증서 대위변제, 추심 등을 통해 회수 절차에 돌입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 정도 상황에서라면 수익성과 돈의 논리로만 보면 당장 지점을 폐쇄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2008년 1월 25일 산업단지에 처음 자리 잡은 후 12년째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 중에서는 유일하게 산단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양수 신한은행 새만금센터지점장은 “분할상환, 유예 등 각종 방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상치 못한 연체가 발생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다른 은행들이 다 나간 상황에서 우리까지 없어지면 안 되지 않냐”고 밝혔다.
그럼에도 영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하 지점장은 “산단에 있던 협력사 4분의 1이 떠났다”며 “최근에도 경매가 이어지고, 은행들은 담보로 잡았던 것을 하나둘 처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담보 범위를 넘어 신용대출도 같이 나가기 때문에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익산, 전주까지 영업망을 넓히고 옥석 가리기를 통해 신규 여신을 유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지점장은 “본점에서도 GM 관련 공문이 하달된 적 있다”며 “기존 대출 구조와 달리 1년 거치 이후 내년 가동되면 상환하라는 조건이었지만 달성되지 않더라도 본점에 상환금을 줄여달라고 신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함께 산단을 지키고 있는 또 한 곳은 기업은행이다. 기은은 2007년 8월 30일 가장 먼저 공단 내 지점을 오픈했다.
문일성 기은 군산산단지점 부지점장은 “금리를 높인다거나 일부 상환 요구하는 경우 등 시중은행에서 퇴출 당하는 경우 여기서 받으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국책은행이라고 해도 부실한 기업들에 신규로 대출을 늘리는 데는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요새 새로 대출을 해주는 기업들의 경우 80~90% 정도의 신보 보증을 끼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더구나 기은은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만큼, 보다 낮은 신용등급(C~BB)의 협력사들의 대출까지 떠안고 있다. 특히 기은은 ‘체인지업 제도’를 통해 협력사들의 금융 부담을 완화해주고 있다. 체인지업 제도는 현대중공업과 한국GM 협력사들에 한해 2~3% 대의 최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비슷한 신용도의 업체에 대한 대출 금리가 9%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대출 만기도 자동으로 연장된다.
이처럼 군산 은행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최악’이라고 지금의 상황을 표현했다. 그런 중에도 일부에서는 새만금 개발과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 지점장은 “새만금 산업단지에 OCI, 도레이 등 대기업들이 들어왔다”며 “당장은 우리와 거래를 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협력업체들이 많이 들어온다면 호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성완 농협은행 군산시지부 지점장도 “새만금 산단에 외자 유치나 새로운 기업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미 바닥은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새만금이나 신재생 에너지 단지라든가 새로운 지원책이 나오면서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며 “벌써부터 관련 수요를 예측하고 투자하려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