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란 공간에는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있다. 제목은 [요즘대학]이지만, 과거에도, 요즘에도 언제나 모교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추억을 선물해 줄 변치 않을 것들을 찾아서.
숭실대학교는 공식적으로 ‘민족 최초의 대학’이라고 학교를 홍보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훈실대’라는 별칭이 잘 알려져 있다. ‘훈남 훈녀가 많은 숭실대’라고 해 생긴 이름이다.
물론 기자처럼 예외도 있다. 혼밥을 한 것도 이때부터였을까. 쓸쓸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2년 6개월 만에 들뜬 마음으로 모교를 찾았다.
◇형남공학관을 지나면 형남풍을 맞는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형남공학관’이다.
형남공학관은 지하와 지상을 합쳐 16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학교 건물 통틀어 가장 높은 건물이다. 총 1만 평 규모로 ‘국내 최대 공학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공과대학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건물이다.
기계공학부 재학생인 박모(26) 씨는 "처음 학교를 보고 죄다 고층 건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라며 웃었다.
형남공학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캠퍼스 중심과 가까워진다. 캠퍼스를 오를 때 이겨내야 할 것이 있다. ‘형남풍(風)’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에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사계절을 가리지도 않는다. 바람의 세기가 국내 세 번째 중 하나는 말도 있다.
올해 졸업한 임모(29) 씨는"얼굴에 유분기가 많은 편인데, 여기 오를 때마다 금방 건조해지더라"라고 말했다.
◇건물마다 사람 이름…누군지는 잘 몰라요
형남공학관도 김형남 박사의 이름을 붙인 건물이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건물은 성까지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베어드홀‧안익태‧조만식‧한경직기념관이 바로 그런 식으로 이름을 정한 곳이다.
안익태기념관은 숭실대의 애증과 같은 공간이다. 독립운동가를 숱하게 배출한 학교에서 친일 행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이름을 건물에 붙였기 때문이다.
애국가 작곡가로 유명한 안익태는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학교와 연을 맺는다. 이후 일본 도쿄의 세이소쿠중학교에 편입했다. 일본 유학에 이어, 미국 유학 후에는 천황에 대한 충성을 주제로 한 곡을 발표한 것이 친일 행적에 논란을 일으킨 부분이다.
지금도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안익태기념관은 숭실대학교 평생교육원 관현악‧피아노 등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조만식기념관도 숭실의 동문 ‘조만식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숭실에서 근대학문을 배웠고 1919년 3‧1운동도 주도했다고 한다.
캠퍼스 핵심부에 있는데 주로 인문, 사회과학대학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곳이다.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공간이라 내부도 학생들이 공부하고 조별과제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많다.
◇나무계단은 치맥 핫플레이스
조만식 기념관 옆에 있는 ‘나무계단’에서 치맥을 안 먹어본 학생은 없을 게다. 날이 좋은 봄, 가을에 학생들은 기다랗게, 사람이 많은 앞뒤로 나눠 앉는다. 그러곤 먹고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나름 캠퍼스의 ‘핫플레이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많은 학생이 모이는 데다, 강의를 듣다 보면 이곳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활기찬 곳이다. ‘나도 수업 빠질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음식을 배달시킬 때 “나무계단으로 가져다 달라”해도 소통에 문제가 없다.
◇졸업생에게 친절한 중도…돈은 안 받아요
나무계단을 앉아 왼쪽을 보면 중앙도서관이 보인다. 학구열을 돋게 하는 외간은 아니다. 대신 들어가면 아기자기하고, 옹골지다. 열람실과 도서실, 영화를 볼 수 있는 미디어룸이 있다. 학업에 필요한 환경은 잘 갖춰져 있다. 도서관 옥상에 가면 캠퍼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장점.
졸업생도 배척하지 않는다. 졸업한 지 2년이 넘은 기자에게도 ‘사용 기간’을 무료로 연장해줬다. 졸업생들이 필요할 때 학교를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돈을 내야 하는 학교도 있다). 대신 도서 대출을 하려면 1년에 3만 원을 내야 한다는 건 잊지 말아야 한다.
◇'피라미드'야? '뿔탑'이야?
숭실대 공식 만남의 장소다. 학생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누구는 피라미드, 누구는 뿔탑이라고 부르지만 무엇을 지칭하는지 다 안다. 학식을 먹기 전 전화로 친구를 찾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기자는 그렇지 못했다.
캠퍼스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피라미드다. 색이 누르스름한데 햇빛을 받으면 보석 같은 느낌이 든다. 장소도 캠퍼스 중간지점에 있다. 색과 장소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고, 접근성도 좋다.
이곳은 본래 복사실이었다. 수업 자료를 출력하거나 복사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고장 난 컴퓨터가 많아 애를 많이 먹었다. 수업 전에 가면 사람이 많아 제때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없던 적도 많았다.
◇공식 포토존은 단연 '백마상'
백마상은 졸업식 날 가장 사람이 붐비는 장소다. 이것을 배경으로 졸업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많다. 숭실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새하얀 배경이 사진을 잘 나오게 해준단다. 이 역시 기자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숭실대는 평양에서 개교했는데, 말을 타고 달렸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잇는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술을 먹고 이곳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산을 정복하는 느낌으로 백마상을 올라간 것이다. 학교 졸업생이자 재직 중인 교수의 목격담이니 믿어도 좋다.
◇학생 순찰단은 '계단'을 배회한다
사진 속 계단은 기숙사와 캠퍼스를 이어주는 계단이다. 얼핏 보면 다른 계단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학생 순찰단’이 가장 신경 써서 순찰하는 곳이다.
숭실대는 학생들을 모아 저녁에 사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순찰을 돌게 한다. 이곳이 특히 순찰의 근거지인 이유는 날이 어둑해 지면 삼삼오오 몰려와 스킨십하는 장소로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주로 1, 2학년때 캠퍼스 커플인 학생들이 둘만의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다고.
사귀는 남녀가 입 좀 맞추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외부인도 많이 들어오는 특성 탓에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자 이곳을 꼭 순찰한다고 한다. 그래도 성인인데… 순찰의 필요성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자율배식이 가져온 5000원의 가성비
숭실대는 얼마 전 교수 전용 식당을 만들었다. 교수 외에는 못 들어간다고 한다. 원래 있었던 교직원 식당을 '도담식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학생들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다.
키오스크(무인발권기)도 생겼다. 얼마 전까지는 입구 쪽에 있는 직원에게 식권을 구매했다. 이제는 키오스크에서 식권을 사고, 직원에게 내면 되는 식이다.
배식도 자율배식으로 바뀌었다. 밥과 반찬을 양껏 퍼먹을 수 있다. 대신 줄이 빠져나가는 속도는 느려졌다. 치킨 등 주요 메뉴는 자율배식이 아니라서 '이럴 거면 왜 자율배식으로 바뀌었느냐'는 목소리도 크다고 한다. 그래도 5000원에 이 정도면 가성비는 충분해 보였다.
◇떠난 시골집 주변은 이젠 프랜차이즈로…
4년 전, 숭실대 앞에서 밥집을 운영하던 주인 할머니가 떠나면서 남긴 글이 화제가 됐다. 학생들도 떠나는 할머니에게 크고 작은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시골집이 떠난 자리에는 아직 자리 잡은 식당이 없다. 대신 근처에 새로운 건물마다 샌드위치, 커피 등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대학가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가게들이 긴장하고 있단다. 그야말로 무한경쟁.
할머니의 말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밥 잘 먹고 건강하다 보면 학생도, 식당도, 우리도 추구하는 일에 골인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