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우리 가곡 중에는 특히 가사가 아름다운 게 참 많다. 김말봉 작사, 금수현 작곡의 ‘그네’도 그런 노래 중의 하나이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사람의 손톱으로 일일이 아주 가늘게 짼 다음, 그것을 하나하나 이어서 만든 모시실이 바로 ‘세(細)모시’이다. 그런 세모시로 짠 모시 베로 지은 치마에 쪽물을 들이면 옥빛이 된다. 금이나 금빛 나는 물건을 두드리거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롤러 사이에 넣어 압연(壓延:눌러 폄)함으로써 종이처럼 얇게 만든 것이 금박이다. 옥색치마를 입고 금박을 물린 댕기를 묶은 여인이 그네에 올라 연신 발을 구르니 몸이 점점 높이 올라 구름을 차고 나갈 정도가 되었다. 날아가던 제비가 이 모양을 보고서 짐짓 놀란 듯이 날던 나래를 접고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저처럼 높이 나는 건 나 같은 제비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어떻게 사람이 그걸 하지?’라고 생각하며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참 아름다운 가사이다.
가사를 지은 김말봉은 1930~50년대에 활동한 여성소설가이고, 곡을 쓴 금수현은 1990년대 초까지 살았던 작곡가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금난새의 아버지이다. 세모시, 옥색, 금박 등의 시어도 아름답고, ‘구름을 차고나간다’는 표현도 시원하며, ‘제비도 놀란 양’이라는 비유는 해학과 생동감이 넘친다.
‘놀란 양’의 ‘양’은 의존명사로서 ‘…하는 듯’, ‘…하는 척’의 ‘듯’이나 ‘척’과 비슷한 말이다. 순우리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자 ‘佯(거짓 양)’으로부터 온 말인 것 같다. 제비도 놀란 양 하듯이 재치 있게 하는 ‘양’은 아름답지만, 진실인 양 해대는 가짜 뉴스 유포는 매우 나쁜 짓이다. 순수한 ‘양’은 아껴야겠지만 추악한 ‘양’은 다 구름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