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유승희(58)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리천장의 벽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2016년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20대 국회 초반에 비례대표 50%, 지역구 30% 여성 공천을 의무화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여성 50% 공천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선관위 등록을 무효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올해 발생한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안도 내놨다. 정부가 체육계 여성지도자 30% 할당제 실현을 위한 고용 확대 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유 의원은 2018년 국회 윤리특위원장 재임 당시에는 국회 개원 이래 처음으로 국회 내 미투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다. 대상은 보좌진과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국회 내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방지를 위한 각종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고 의무제 등을 도입하는 내용으로 국회 운영과 관련된 법안 6건을 대표 발의했다.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역임했던 유 의원은 "남녀 차별을 극복하려는 것과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내세우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라며 "차별을 극복하는 게 평화고,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들에겐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초'라는 상징은 여성들에게 고무적이고 힘을 줘요.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광범위하게, 여성이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지 않고, 어딜 가서든 편하게 의사 표현을 하면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덜 화나는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길 바라요."
유 의원은 언제나 달린다. 국회에서 만난 그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출신 배경을 '노동 현장'이라고 했다. 노동자·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증진을 위해 달리겠다는 다짐은 10여 년간 구로공단의 산돌노동문화원에서 근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일했던 당시와 다르지 않다.
다음은 유승희 의원과의 일문일답.
- 여성 정치인으로서 주도적으로 여성 비율 확대 법안을 발의해왔습니다. 왜 여성의 비율이 고정되어야 하고,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여성할당제는 성 불평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예요. 여성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데도 사회의 각 분야의 요직에는 남성들이 포진해 있잖아요. 이러한 구조가 우리사회 전반의 남성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있어요. 세상은 '너희들이 열심히 하면 기회는 열려있다'고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얼마나 두꺼운데요. 여성할당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강고한 유리천장을 깰 수 없어요.
정치권을 비롯해 모든 분야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해요. 두꺼운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2013년 여성위원장 시절 여성공천 30% 등 성 평등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명문화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는 못하고 있죠. 비례대표는 50%를 여성으로 한다고 법으로 돼 있는데, 지역구에서 출마하려는 여성들에겐 기회가 없어요. 저는 17,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지역구 여성공천 30%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다음 총선까지 반영될지는 미지수예요.
특히 체육계에서는 10년 전과 판박이로 감독의 성폭행 문제가 불거졌어요. 여성할당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여성 선수들의 인권이 보호되기 어렵다는 체육계의 절박함이 있었고요. 마찬가지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등 주요 의사결정기구에 여성위원이 일정 비율 이상 참여해야 여성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될 수 있어요. 여성이 의사결정에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바탕이 되어야 양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 우리 사회는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7월 초에 나온 남녀임금 격차 통계가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구조의 단면을 보여줘요. 통계청과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244만9000원이었어요. 남성임금 평균의 70%에도 못 미쳐요.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가 30%가 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물론, 이 결과에 대해 남녀 간 전체평균임금을 비교한 것이지 같은 직급 선상의 비교가 아니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어요. 하지만 전체평균 격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여성이 하위직·비정규직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예요. 통계를 보면 임시근로자, 비정규직 비율이 여성이 남성보다 높고, 평균근속연수도 남성보다 짧습니다. 출산이나 육아 등 여성들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우리 사회가 남성중심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 사회 구조적 모순에 눈 뜬 계기는 언제입니까. 10여 년간 시민사회운동 하면서 본 구조적 모순은 무엇입니까.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구로공단 산돌노동문화원에서 수출 공단의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했어요. 소위 '닭장'이라 불리는 숙소에서 보수 없이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이들의 삶이 나아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때였죠. 그땐 최저임금 개념도 없었어요.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죠. 함께 살았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열악했어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고 휘둘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번 돈을 시골에 보내서 남동생이나 오빠 학비에 보태야 하는 모습들이었어요.
사회 전체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삶에서 희망을 품기도, 미래를 꿈꾸기도 어려웠어요. 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만으로는 현실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권에서의 정치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셨습니다. 17·19·20대 국회에서 활약하셨죠.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정치인이 꿈이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며 사회적 약자 편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유학이나 취업의 길보다는 학업을 마치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잖아요. 현장에서 알게 된 거죠. 약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나아지게 하려면 제도권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여성시민단체의 추천으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됐고, 기초의원으로 당선됐어요. 계파도 연고도 없던 제가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전국 2위, 경기지역 1위라는 득표를 했어요.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새천년민주당 최초의 공채 여성국장으로 당직을 시작했어요. 당내 성 평등을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먼저 정치권에서의 양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여성위원회를 상설위원회로 만들고, 여성할당 공천제 등을 추진했습니다."
-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국회는 양성평등이 얼마나 이뤄지는 곳입니까. 국회에서 마주한 현실은 어떠했나요?
"국회는 법과 제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주도해나가야 해요. 하지만 사회의 변화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죠.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보세요. 300명의 의원 중 여성 국회의원은 51명입니다. 17% 예요. 지역구만 따지면 전체 253석 중 26석(10.3%)에 불과해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이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에서는 여성 비율이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거죠.
양성평등을 위한 법안논의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지지부진하기 일쑤예요. 지난 한 해 내내 각계각층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났고, 저를 비롯해 많은 의원이 미투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통과된 게 없어요. 부끄러울 따름이에요.
지난해 국회윤리특별위원장으로서 실시했던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예상대로였어요. 성희롱, 성추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가 여성 하급직에서 발생했고, 가해자는 상급직 남성이 대다수였죠. 폐쇄적인 국회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보좌진을 포함한 국회 소속 공무원 모두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성폭력범죄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법안과 보좌진 여성 할당 법안 등을 발의했습니다."
- 유 의원이 생각하는 평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당 특위인 '포용적 사회안전망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그동안 사회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그 대가로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고 잘 살아야 하는데, 일부 계층만 잘 살았죠. 법이나 제도가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는 데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경제적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보호받지 못한 채로 누락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복지 정책을 강화해야 해요. '퍼주기식'이라고 호도하는데, 복지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돼요.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제일 높고, 청년 자살률도 상당히 높죠. 경제 발전을 위해 애쓴 세대가 가장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게 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국가는 분배를 공정하게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있어요. 불평등하면 불안해요. 평화롭기 위해서는 평등해야 하죠.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제도적인 구상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