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자본시장1부 기자
상장 전부터 신라젠은 말 많고 탈 많은 기업이었다. 장외 주식으로 거래될 당시, 복잡한 지분 구조와 유명 주식 전문가의 연루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상장 후에는 △문은상 대표의 보유 지분 고점매도 △임원들의 스톡옵션 행사로 대규모 차익 시현 후 퇴사 등의 논란이 일었다. 경영진의 ‘발 빼기’에 이어 펙사벡이 효능이 없다는 ‘물약’ 논란까지 더해져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같은 혼란에도 내부자들은 자기 몫을 살뜰히 챙겼다. 여러 의미로 기업공개 이점을 톡톡히 누린 사례다.
간담회에는 사채에 투자한 기관도 참석해 소통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실상 그 역시 손해를 입은 주체는 아니다. 3월 신라젠은 11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당시 투자 기관들은 무용성 평가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온다면 기존 연 복리를 3%에서 6%로 올린다는 안전장치를 두 번이나 걸었다. 전환가액이 주가보다 낮다면 신라젠 측에 조기상환을 청구해 이자만 잘 챙기다가 투자금만 회수하면 마무리인 셈이다. 당시 신라젠은 내부자금이 충분한 상태였고, CB투자자들과 긍정적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임상 실패의 피해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건 신라젠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들이다. 한 주주는 무용성 평가 발표 직전 내부 임원의 보유 주식 전량 매도, 꾸준한 임상 실패 가능성 제기에도 펙사벡의 미래를 꿈꾸며 회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주주들은 임원진에게 손실에 대한 원망 대신 신라젠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회사 측은 다시 임상시험에 집중할 테니 펙사벡을 믿고 기다려 달라는 공허한 답변만을 반복했다. 매년 적자 폭을 확대하면서도 가치투자로 가자는 뉘앙스로 느껴졌다.
남은 건 시장의 불신이다.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고,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자본시장을 마음껏 활용했지만 결국 임상시험에 실패해 어쩔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득을 본 사람은 명확한데 피해는 불특정 다수에게 돌아갔다. 신약 개발을 위해 자본시장을 활용하고, 파이프라인 수익을 주주들과 나누겠다는 포부 대신 내부자들이 한몫 제대로 챙긴 바이오 기업이라는 멍울만 남았다. 들떴던 과거는 지나고 결과를 내놓을 현재만 남았다. 제2의 신라젠 탄생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