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집에서 쓰레기가 나온다. 쓰레기는 누구에게나 짐이 된다. 자리 차지하고, 분류하기 귀찮고, 버리러 나가기는 더 귀찮은데다가, 쓰레기 열심히 버린다고 딱히 누가 상을 주거나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 쓰레기들을 많이 버리면 이득이 되는 가게가 있다. 가게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름하여 ‘쓰레기마트’다. 당연히 쓰레기를 사러가는 마트는 아니고, 쓰레기를 사용해 물건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가게다.
소셜 벤처기업 수퍼빈이 운영하는 쓰레기마트는 연남동에 위치해 있다. 쓰레기마트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면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그 포인트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받지는 않는다. 재활용되는 쓰레기인 '플라스틱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철 캔'이 쓰레기마트에서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다.
쓰레기마트엔 수퍼빈에서 개발한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 두 대가 비치돼 있다. 페트병은 10포인트, 캔은 15포인트를 적립해준다. 별도의 회원가입 필요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포인트 적립이 가능하다. 이 경우 물건 구매 시 SMS로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모든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을 받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포인트를 적립해보기 위해 일부러 ‘뚱뚱한 커피캔’을 다 마시고 가져가 보았지만, 이런 유형의 캔은 ‘네프론’에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압축이 불가능했다. 또 플라스틱 페트병은 라벨과 뚜껑을 제거해서 버려야만 한다.
이렇게 모은 포인트로는 주로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구성된 쓰레기마트의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친환경 제품의 대표주자인 에코백부터 페트병이나 소방관 옷을 재활용해서 만든 가방, 지갑, 배지, 옷, 음료수 등이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이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어떤 이들일까? 이날 쓰레기마트에서 만난 A(23) 씨와 B(25) 씨는 각각 서울 은평구와 영등포구에서 재활용품을 가득 담은 종이백을 들고 이곳을 찾았다. 두 사람은 원래 환경 관련 프로젝트를 하다 만난 사이일 정도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A 씨는 “쓰레기로 포인트를 모은다는 개념도 재미있고, 연남동이라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에 위치한 것도 맘에 든다”면서 “이런 재활용품 환급 제도가 다른 여러 기업에서도 정착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마트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그냥 집 가까운 곳에 쓰레기 버리러 온 C(38) 씨도 있었다. “친구가 쓰레기마트를 추천해 거의 매일 방문해 쓰레기를 버린다”라고 말한 C 씨는 거의 1000포인트 가까이 포인트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기자의 경우도 집에 이같은 재활용 쓰레기가 매우 많다. C 씨처럼 쓰레기마트가 가까이 있었다면 분리수거도 보다 올바르게 하고, 포인트로 제품도 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쉽게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일산에서 온 D(40) 씨는 10살의 자녀와 함께 지나가다가 특이해 보이는 상점이 있길래 들렀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쓰레기마트가 어떻냐고 묻자 “우리는 쓰레기만 버리는데 여기서는 쓸 수 있는 물건을 주니까 가게가 손해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D 씨가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만든 물건을 다시 판매하는거야”라고 했더니 아이는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쓰레기마트는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운영기업 수퍼빈 측은 쓰레기마트에서 그리 많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쓰레기마트는 자사의 재활용기기인 ‘네프론’을 홍보하고,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유통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 때문에 쓰레기마트 1호점인 연남동 지점은 9월 5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쓰레기마트의 점원은 평일엔 약 200명, 주말엔 약 4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C 씨처럼 주변에 거주하며 자주 방문하는 단골 손님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수퍼빈 관계자는 "실제 운영해보니 의미있는 환경 활동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걸 알게 된 계기였다"면서 “운영 안정화가 이어진다면 2회, 3회차 쓰레기마트를 오픈하고 추후 상설매장까지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