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라면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니지~

입력 2019-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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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산업부장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경제, 정치,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예상을 깬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의 기본이 ‘예측과 대비’인데 현 상황은 낙담을 넘어 ‘포기’ 수준에 도달했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재계가 ‘이것은 아니지~’라고 한탄하며 속터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법원의 일제 징용공 배상판결을 놓고 오래전부터 산업계 내부에서는 핵심소재 수출 규제 등 일본의 경제보복이 임박했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이후 수개월 동안 정부는 침묵했다. ‘일본이 설마~’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물밑에서 일본 정부와 타협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론은 난데없는 반도체 핵심 3개 소재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통지서였다.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대기업들을 모아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수조 원을 들여 핵심소재 국산화를 하겠다는데, 이 정도로 해결될 문제를 그동안 하지 않았다면 정부의 직무유기다. 고육책이라고 해도 ‘이것은 아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역시 재계는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 카드였다. 지소미아는 일방적 정보 수혜가 아니다. 일본이 8개, 중국은 30개나 운용 중인 군사 정찰위성을 단 하나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상황을 차치해 놓자. 지소미아 종료가 미국과의 안보갈등, 일본의 경제보복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는 또다시 ‘우리라면 할 수 있다’라는 정신승리 한마디에 묻힌 듯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화학소재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액이 한국의 40.9배였다. 일본 소재 기업은 반도체 산업과 함께 성장해 1970년대부터 반도체 글로벌가치사슬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이런 역사를 무시하고 ‘예스, 위 캔(Yes, We can)’의 정신무장으로 극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기업들을 닦달한다면 썩소(썩은 미소)를 지으며 ‘이것은 더욱더 아니지~’라고 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같은 반응을 외부로 표출하면 토착 왜구로 몰아 ‘역사 정의’라는 올가미로 목을 조르니 산업계는 ‘찍소리’조차 낼 수 없다.

현 정부 인사들은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에 푹 빠져 있다. 자신들이 하면 뭐든지 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특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장기적으로 해야 할 것을 구분 짓지 못하고 있다.

경제 분야의 이런 무모함은 이미 소득주도성장에서 심각성을 드러낸 바 있다.

수많은 정통 경제학자들이 그 무모함을 지적했지만 문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몰아붙였다. 지난 2분기 하위 20%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상위 20% 소득은 증가하면서 빈부 격차 지표는 역대 최대인 5.30배까지 벌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분기의 5.24배보다 더 커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많은 경제연구기관이 우려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50%를 오르내린다. 지지자들은 이런 수많은 역경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문 대통령이 국가 정의실현을 위해 ‘헌신(獻身)’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신’이 아니라 ‘집착’에 가깝다. 어떤 막말을 쏟아내도 북한에 대해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천금같이 소중하게’라고 화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의’는 궁극적으로 승리하며 막강한 힘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힘이 정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방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면 그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적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적의는 갈등과 분열, 분쟁, 전쟁의 기폭제가 된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 논란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사법 정의를 실천할 적임자이기에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그와 그 가족의 불의(不義)의 문제에 눈 감아야 한다면 ‘일그러진 정의’일 뿐이다.

집권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정부의 절대 책무가 일방향 정의실현을 위한 ‘투쟁’이라고 믿는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그것은 정말 아니지~’라고 누군가는 반드시 말해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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